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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호 작가 Feb 21. 2023

엄마는 간첩?

또는 빚쟁이?

9시 40분이 되어서야 동네 설렁탕 집에 둘러앉았다. 아내가 이사하기 전에 이미 이사 가서 들어갈 책장, 옷장등을 각각 방에 맞춰서 정리를 해놓은 에 정리는 지난번 보다 쉽게 되었다. 그래도 6명의 짐을 옮기는 일은 아무리 비싼 포장이사를 써도 아무리 숙련된 이삿짐 센터 직원이 와도 입을 쩍 벌리며 짐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큰 아이는 6학년이 된다. 처음 입학을 남양주에서 하고, 2학년을 동대문에서 보내고, 4학년을 서초에서 보냈다. 그리고, 다시 남양주로 돌아와 입학을 했던 학교도 아니고 옆 학교에 전학을 했다. 5학년 둘째도 지 누나랑 같고, 셋째는 동대문에서 입학만 하고 서초로 옮겨서 세 번째 학교다. 막내만 그나마 두 번째 학교~!


누군가 그랬다. 군인 부모를 둔 자녀 보다 더 많은 이사와 전학을 하는 거라고~!

둘째를 낳고 한국으로 돌아와 월세, 전세, 매매를 해서 3번의 이사를 남양주에서 하고, 동대문 아파트 분양을 받아 가고, 그리고, 서초 빌라로 이사를 하고, 지긋지긋한 코로나 시대를 힘겹게 서초에서 버티다 다시 남양주로 돌아왔다. 10년동안 6번의 이사를 했다.


그간 이사로 돈도 벌었다. 더 나은 상급지로 갈아타기도 하고, 아파트에서 빌라로 옮겨 타면서 투자금도 만들어 투자도 해보고, 돈도 많이 잃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남양주~!

생각해보니 시작한 곳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금의환향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하나 던져 본다. 중요치 않게 느껴진다. 금환향도 한낫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 본질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이다. 남양주를 떠나던 나의 모습보다 더 단단해지고, 내실 있는 나의 모습으로 많이 발전했기에 그 내면의 모습은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꽃마차를 타고 오는 금환향의 모습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떠날 때의 나의 모습보다는 MUCH BETTER 하다~!

 

이번 집은 처음으로 내가 결정했다. 미국에서 직장을 정리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온 나였지만, 살 집 계약은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장 찍으라는데 찍고, 이름 자필로 쓰라는데 쓰고, 무슨 서류가 그렇게 많았는지 그냥 머리가 하얘져서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렸었다. 하지만, 6번의 이사에 내가 원하는 구조의 집을 고를 수 있는 안목과 자격이 생겼다. 4명의 크레이지 비글 같은 사남매와 재택근무를 하는 나의 상황 그리고, 공동육아를 자청하고 집안일도 당당히 절반을 한다는 입장에서 집을 적극적으로 고르고 의견을 피력했다. 최종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구조와 층의 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결혼 13년 동안 적어도 결혼 이후 10년 동안은 나는 항상 결정의 순간이면 뒷짐 지고 멀찌감치 결정에서 멀어져 있었다. 분명 나의 삶과 생활에 직결되어 있었음에도 그렇게 한 이유는 아내를 존중해 주는 배려의 마음이 있는 것처럼 포장 했지만, 실상은 결정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자기 방어가 실체였다. 그런 나의 태도가 아내는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서 좋았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내 모습을 알아차렸소? 그랬다면 10년을 지켜보았던 거요?


13년을 살 부대끼며 한 침대 쓰는 부부도 여전히 모르는 게 참 많다..


큰아이가 크게 크게 썰어 놓은 깍두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가 나머지는 설렁탕 국물에 거의 던지듯이 하며 볼맨소리로 불평을 한다.

"아니 누가 쫓아와요?"

"막.. 잘못을 저지르고 2년마다 도망 다니는 것 같잖아?"

"돈 빌리고 안 갚았어요?"

밥 먹다 아내와 나는 눈이 마주친다. 셋째가 말한다. "에이 설마. 엄마가 말했잖아 더 좋은데 갈려고 이사를 많이 한 거라고.." "그리고, 우리 얼마 전에 대출 다 갚았어! 알잖아 누나~!"


큰아이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본격적으로 폭탄을 던질 기세다.

"아니 그러면 왜 이렇게 이사를 많이 다녀요~!! 저는 정말 이사 가기 싫다고요~! 벌써 몇 번째 전학이에요!"


마음이 아프다.. 어려서 괜찮을지 알고 이사를 했는데 그게 무 자르듯이  멈출 수가 없었다. 이사를 하지 않으려고 두뇌를 풀가동 해보고 부동산에 발품도 팔아 보았지만, 그때 오르는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고, 이사를 통한 차익으로 대출을 상환하는 게 가장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엄마가 말한다. "누가 쫓아오지 않아.. 엄마는 사실 간첩이야~!"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 이런 순간에도 아이에게 장난을 거는 아내의 멘은 정말 갑이다.


아내가 한술 더 얹는다. "외 할머니 고향이 강원도인 거 알지? 외할머니의 아빠는 북한 분이셔, 그래서 거기에 다 모여 사는 거야~!"

아이들은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진짜인가? 아닌가? 아이들 두뇌도 풀가동 중인 것 같다.


매사 판단하길 좋아하는 셋째가 "아니.. 간첩이 무슨 아이를 넷이나 낳아요? 말도 안 돼~!"

아내는 그 질문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여유롭게 "원래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속이려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많이 낳고 하는 거야. 누가 엄마를 간첩이라고 의심하겠니?"


이 정도 하니 나도 한번 검토를 해본다. 아내를 뉴욕에서 만났는데, 혹시 그때 이미 간첩이었다면? 영화 '쉬리'.. 가 떠오르고 그.. 브레드피트가 나오고 아내가 스파이였던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이 여자가 간첩일까? 그렇다면 처가 식구들이 다 한통속이라는 건데.. 가끔 장모님의 칼 같이 공정함을 논하시는 모습에 손윗 동서와 공산당 아니냐며 말한 적이 있었는데.. 소 뒷걸음질 치다가 맞춘 건가? 그러면 나는 이사실을 몰랐다고 조사받을 때 말해야 하나? 아니면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을지도 모르니 해외 도피???


시간이 늦었다고 이제 그만 일어나자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런데, 내 머릿속엔 얼마 전 미국 본사로 부터 이직 제안을 받은 게 불쑥 생각난다. 아내가 아이들 한국에서 키우기 힘들다며 미국에 갈 수 없냐고 말해서 시작된 이민 계획인데.. 이것 역시 아내의 치밀한 계획으로부터 나온 것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긴다.


아내를 한번 다 본다. 나를 보며 웃고 있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오싹하다~!


내가 말했다. "오늘은 여보가 계산해~!" 하지만, 머릿속으로 내게 드는 생각은 "공작비용 많지? 그걸로 오늘 저녁은 얻어먹은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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