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49제

by 최소라

8월 12일....

9월 29일...

엄마의 49제이다. 이 단어를 내가 사용할 일이 있을까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도 엄마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생각하며 별 탈 없이 아니면 좀 더 밝게 지내왔던 날이었다.

아침에 아빠와 검은 옷을 입고 일찍 엄마를 모시고 있는 추모관으로 갔다. 일가친척들이 모여 엄마의 제를 지냈다. 생각보다 긴 일정이었지만 오늘을 눈물을 보이지 않고 엄마를 잘 보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무릎을 꿇고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하나 엄마를 추억했다.

눈물을 참을 수 있을 거란 내 확신과 달리 엄마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는 환한 웃음으로 나는 맞이 하였지만, 또 곧 내 우는 얼굴을 보고는 찡그리기도 하였다.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의 일생은 어땠을까?

내가 생각하는 만큼 엄마는 많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좀 더 괜찮은 나날을 보냈던 걸까?

한집의 딸로 태어나 아빠를 만나 아내가 되고 또 우리를 낳아 엄마가 된 이 한 여자의 일생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 가슴속으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고맙고 고마워를 수도 없이 외쳤다.

꾸역꾸역 눌렀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괜히 엄마에게 모질게 대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으다가도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미안해짐이 몰려와 또 고개를 떨궜다.

49제는 남아있던 혼을 편한 세상으로 보내는 행사하고 하였다.

괜히 자주 꿈에 나오던 엄마가 요 며칠 꿈에 나오지 않은 것이 이제 진짜 가려나 하는 두려움을 주기도 하였다.

한참을 울고 나니 그래 엄마를 좋은 곳으로 보내드려야지 하며 좀 더 경건하게 있었다.

엄마를 보내고 나니 참 세상이 허무했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고 못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애써 더 밝게 지내고 어두움을 비추기 싫었다. 엄마가 나는 이렇게 잘 키웠고 또 대단한 우리 엄마 이름에 먹칠을 하기 싫었다.

하늘은 참 무심하다. 어떻게 엄마 같은 사람을 이렇게 일찍 데려가는지....


엄마를 보내고 집에서 한참을 잤다. 일어나 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창고방에는 할머니 영정사진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아직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몇 번 고비가 있으셔서 아빠가 할머니 집에서 가져온 사진이라고 하였다. 불을 끄고 거실로 나갔는데 엄마 사진을 보는 순간 또 눈물샘이 고장나버렸다.

하늘도 무심하지 하늘도 무심하지...


명절이다. 평소에 제사는 지내지 않았지만 전과 튀김을 좋아하는 우리를 위해 항상 엄마는 음식은 장만하셨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수다를 떨며,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한다며 엄마와 함께 음식을 만들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차례상을 준비하였다. 생각보다 힘들면서도 나름 엄마한테 배운 것을 제법 흉내 내 보았다.

그렇게 명절 아침 내가 차림 음식으로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참 인생이란 게 허무하다. 허무하니깐 더 보람차고 잘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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