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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pr 09. 2021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그리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브런치가 뭐길래2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아직 한 달도 흐르지 않았다. 어떤 글을 써볼까 고민하던 찰나,

‘내가 어.쩌.다.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나.’ 생각해봤다.


나는 글쓰기는커녕 일 년에 책을 5권 정도 읽을까 말까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을까. 이야기의 시작점은 내가 결혼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도에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신혼집을 위해 내 인생 첫 대출을 받았다.(자가 아니고요. 전세입니다.) 부모님 덕분에 학자금 대출 한번 받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고 짧은 사회생활과 적은 월급에도 대출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난생처음 대출을 받았다. 평생을 부모님께 빚지며 인생이라 하여도, 부모에게 자식으로서 진 빚과 은행에서 빚을 진 느낌은 정말 달랐다.


요즘 시대에 대출 없이 결혼하는 신혼부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누구나 다 빚이 있다고 해서 내가 가진 빚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억’ 소리 나는 빚이 생기니 행복한 신혼 생활을 만끽하다가도 빚을 생각하면 ‘억억억’ 토하고 싶고, ‘억억억’ 울고 싶었다. 더군다나 결혼 전에 독립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매달 고정적으로 내야 하는 돈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각종 세금과 경조사비, 통신비, 관리비 등등, 월급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억’ 소리 나는 빚 때문에 매달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는 게 좀 서글펐다.


영화 <베테랑>에서 배우 황정민 씨가 “무슨 대출을 XX.. 대출 이자만 모아도 집 샀겠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정말 그랬다. 원금은 갚지도 못하면서 이자만 꼬박꼬박 내고 있는 현실이 몹시 서글펐다. (자가도 아닌데.) 우리나라 집값은 왜 이렇게 비싼 걸까. (그래도 2021년 집값을 생각하면, 그때 집값은 착했던 것이었다. 눈물 좀 닦자.) 서글픈 마음을 애써 다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끝에, 이 나라에, 이 지역(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비싼 편이 아니었으나, 직장인들의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신혼부부, 아니 모두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다.)에 사는 것 때문에 이렇게 비싼 이자를 내고 살고 있으니 다른 것으로부터 보상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도서관’이었다. (네. 매우 생뚱맞겠지만, 정말입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지만 정말로 대출 이자비용이 너무 아까워서 나는 도서관에서 읽는 책으로 비용을 상쇄시키려 했다. 다행히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면 도서관에 갈 수 있었고 이자 내는 만큼 책이라도 실컷 (무료로) 보기로 했다. 은행에 내는 돈을 왜 나라에서 제공하는 복지 생활로 메꾸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매우 비논리적인 행동이지만 어찌 됐든 당시엔 내가 굴린 잔머리에 스스로 상당히 흡족해했다. 수시로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 읽는 습관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글쓰기까지 하게 되었으니까.


도서관에 가면 갈수록 그곳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 앞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서성이다 이내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고르고, 이 책 속에는 어떤 언어와 마음이 담겨 있을까 생각하며 책을 들춰보는 순간들. 눈으로 활자를 좇으며 한 글자 한 글자를 마음에 새기는 순간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책의 매력에 빠지자 시간이 ‘나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기존에 몰랐던 지식 혹은 지혜를 깨닫게 되어 유익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고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좋았다. 한동일 교수님의 책 <라틴어 수업>에서는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려고 시작하면 좀 어떻습니까? 수많은 위대한 일의 최초 동기는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라는 구절이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그리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작은 이유여도 괜찮다. 대출 이자 비용이 아까워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그 비용을 상쇄시키려고 했던 지난날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상당히 비논리적인 행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얼마나 유익한 선택이었던가. 이자 비용이 아깝다고 투덜거리며 찾아갔던 도서관에서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스승들을 만났고, 마음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들을 만났으니까. (여기서 스승과 친구들은 책을 의미한다.) 더불어 읽은 책을 SNS에 업로드하기 시작하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이 닿아 오프라인에서 독서모임을 하기도 하고, 여러 출판사에서 서평 제의를 받고 서평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읽는 사람은 언젠가 쓰는 사람이 된다던데, 책을 읽으며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활자들이 소복이 쌓여 이제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나는 약 한 달 전쯤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인생 첫 대출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 시작점은 대출 이자 때문이었다. 아마 결혼하면서 대출을 받지 않았더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이자 비용을 상쇄시킬 생각은 하지 못했을 테니까. (빚이 있는 자들이여, 우리 도서관에 갑시다.)


상식적으로는 비논리적인 방법이었지만, 도서관을 향했던 지난날 나의 발걸음이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준 작은 씨앗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또 궁금해진다.

브런치는 나의 인생에 또 어떤 씨앗이 되어줄지.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유병욱 작가님의 글을 남겨두고 싶다. 

생각해보면, 가장 힘든 건 늘 ‘시작’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시작만 하면, 씨앗을 뿌려놓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은 시작되고 몇 년 뒤엔 분명 수확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수확의 질과 상관없이, 나는 분명 조금 달라진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_ 평소의 발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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