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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pr 01. 2021

우리 엄마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책 제목 :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저자 : 김소은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어느 주말, 하루 종일 신나게 이리저리 뛰어놀았는데도 낮잠을 건너뛴 아이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조기 육아 퇴근이 주어진 나는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도서관 한쪽 부분에 빽빽이 놓여있는 책들 사이에서 이 책을 골랐을 때는 ‘딸과 엄마의 평범한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평범한 이야기를 읽으며 잔잔한 주말 밤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나는 책을 부여잡고 눈물과 콧물을 대방출하며 대성통곡하고야 말았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제목만 보고 성인이 된 딸이 사회생활 혹은 연애나 결혼을 해서 엄마가 모르는 하루가 점점 더 많아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작가님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투병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제목 그대로,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였다. 나는 이 사실만으로도 목울대가 굵어지고 가슴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어서 나는 언제든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엄마 집에 찾아가면 언제든 엄마를 만날 수 있다. 작가님이 겪은 슬픔이 어떤 슬픔인지 진짜 느껴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그 슬픔이 언젠가는 내게 다가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두려워 내 아이의 또래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목 놓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 단정한 투피스를 입고 연분홍색 구두를 신고 있던, 나를 만나기 전 하고 싶은 꿈을 가슴속에 가득 품은 20대였던 엄마는 가늘고 여리여리 했지만  내 눈앞에 있던 엄마는 늘 강한 사람 같았다. 아니 강한 사람이었다. 귀가하는 고등학생 딸을 마중 나와 EBS 기출문제집과 자습서가 빼곡히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도 척척 들어주는 튼튼한 팔뚝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삼 남매 중 하나라도 잘못하면 세 명을 모두 앉혀놓고 연대 책임을 묻던,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가장 무섭고, 대차고, 카리스마 넘치던 사람이었으니까. 남편은 대부분의 날을 야근으로, 회식으로, 늦은 밤 귀가해서 혼자 집안 살림과 자식 세 명을 먹이고, 씻기고 했음에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아침이면 남편의 와이셔츠와 자식들의 교복까지 빳빳하게 다림질해주던, 웬만해선 지치지 않던 사람이었으니까. 엄마는 내게 늘 단단한 사람이고 강한 존재였으니까.


단단하고 강해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엄마가, 그랬던 엄마가, 자꾸 약해지는 것 같다. 결혼 전에 매일 보던 엄마를 결혼하고부터 몇 개월에 한 번씩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자꾸 엄마가 늙어있다. 다섯 식구의 살림을 도맡아 쉴 새 없이 바빠서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하는 네일아트도 받아보지 못했던, 그래도 언제나 내 눈엔 뽀얗고 통통했던 엄마 손엔 어느새 검버섯이 가득해졌다. 어릴 때 용돈벌이로 한 가락 당 50원, 100원씩 하며 간신히 찾아냈던 새치는 이제 너무 많아져 다 뽑으면 큰일 날 정도가 되었다. 예전에는 엄마 얼굴에서 외할머니 얼굴을 찾아볼 수 없어 엄마는 할아버지의 피만 물려받은 게 분명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엄마를 볼 때마다 외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진다. 내가 아이를 낳았으니 우리 엄마도 할머니가 된 것이 분명한데 나는 엄마가 할머니가 된 것을 쉬이 인정하지 못한다. 손주를 안겨드렸으니 내가 엄마를 할머니로 만든 것인데, 다른 의미로 진짜 ‘내가’ 엄마를 할머니로 만들었을까 봐,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두렵고 싫다. 


몇 년 전,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 씨가 자신의 엄마를 살갑게 챙기는 것을 보았다. 엄마와 함께 쇼핑하며 엄마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추천해드리고 며칠 뒤면 여행길에 오를 엄마를 위해 이모저모 챙기는 모습이 전해졌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다음 생이 있다면 엄마의 엄마가 되고 싶다며 눈물을 머금었다. 어쩌면 많은 자식들의 마음이지 않을까. 나는 다음 생을 믿지 않지만, 만약 혹시라도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엄마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에게 많은 것을 경험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아이와 여행을 다녔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엄마가 어릴 때 못 해본 것들을 요즘 아이들은 참 빨리도 하는 것 같다고, 요즘 아이들이 부럽다고 하셨다.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 당연히 엄마가 자랐던 세대와 현세대의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다를 수밖에.라고 생각하고 가벼이 넘겼지만 자꾸만 엄마의 말이 생각나서 마음이 저릿하다.


이렇게 효심이 충만하다가도 며칠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툴툴거리고,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딸로 돌아갈 테지만, 이런 딸이라도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준, 아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엄마라고. 나도 내 딸을 키우면서 엄마가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아끼며 키웠는지 알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엄마가 내게 준 사랑을 엄마에게 다시 돌려줄 때까지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달라고. 엄마는 내게 하나의 세상이라고.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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