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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pr 03. 2021

아이들은 죄가 없다.



책 제목 : 새

저자 : 오정희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이 책을 읽는 내내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고 마음이 불편했다. 마치 누군가의 생살과 생피를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처럼 마주해서는 안 될 것을 마주한 것만 같다. 지금도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온갖 생각과 불편함을 잔뜩 껴안은 마음을 쉽사리 가라앉히기 힘들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정말 죄가 없다. 죄가 없는 아이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아니 낼 수 없었다. 누구 하나 직접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아이들은 소리 내지 않고 웃는 법과 우는 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종이 인형처럼 가만히 있어도 아이들 때문에 외숙모는 매일매일 미쳐버릴 것 같다고 했고 큰어머니는 자기 명도 못 채우고 죽을 것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주인공 두 남매의 주변에는 본받을 만한 어른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웠다. 인형 곰순이가 집에 온 날, 우미는 인형에 불과한 곰순이를 쥐어박고, 후려 치고, 째려봤다.


“시끄럽게 굴면 때려 줄 테야. 내쫓을 테야. 혈압이 오른다구. 아이구, 지긋지긋해. 정말 미치겠다구. 내 새끼들 시중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남의 새끼 치다꺼리로 골병들어야 하지? 그렇게 빤히 보면 어쩌겠다는 거야? 니 눈깔이 나를 죽이고 말 거야.”


어른들이 우미를 구박했던 것처럼 우미도 똑같이 곰순이를 구박했다. 동생인 우일도 마찬가지였다.


“곰순이가 오줌을 쌌어. 냄새나고 더러워.”


심지어 아이들은 가위로 곰순이의 배를 갈랐다. 하지만 우미와 우일은 곰순이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남의 집에서 살아가려면 이런 모욕을 당해도 소리 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그랬으니까. 우미와 우일은 키가 자라는 만큼 눈치 보는 법도 함께 배웠다.


곰돌이의 배를 가른 일이 일어난 후에 담임선생님은 우미에게 상담 교사를 배정해주었다. 상담 교사는 이제껏 겪어 본 어른들과 비교하면 꽤 괜찮은 어른 같았다. 상담 교사는 보름에 한 번씩 우미를 찾아와 누구에게나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희망과 용기라고 가르쳐주었다. 또한 자신과 우미는 서로를 잘 알고 많은 것들을 나누고 있는 특별한 사이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우미는 알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높은 아파트에 사는 상담 교사는 절대로 자신의 어둡고 축축한 삶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우일과 함께 상담 교사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딸아이에게 우미를 “불쌍한 아이”라고 말했다. 상담 교사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내내 얘기했던 ‘희망과 용기’는 그 순간 처참히 짓밟혔다는 것을 말이다.


계속해서 어둠 속으로 달음박질하는 우미와 우일이 가여워서 아이들을 이대로 방치해 둔 주변 어른들에게 설명하기 힘든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을 향한 분노와 비난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쓸어내린다. 그들은 몸만 커버린 또 다른 우미와 우일이었기에.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 견딜 수 없어.”


이 작품으로 한국인, 한국 문학 작품 최초로 독일 리베라투르 상을 수상한 오정희 작가는 수상 소감 중에 “사회가 불안하고 가정이 무너질 때 가장 큰 희생자는 방어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입니다. 버림받음과 폭력과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부서지는 어린 영혼은 성장하여 우리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미래가 된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동학대 기사를 마주하게 되는 요즘,


우리 사회는 점점 부패되어 가고 있으며,

웃음소리가 넘쳐 나는 가정보다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나 좀 살려주세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반가운 건,

단순히, 올라간 기온과 길가에 피어나는 꽃들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따스한 볕을 벗 삼아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소중해서 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어른이 되어

아이들의 소중한 웃음을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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