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관하여 ;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책 제목 : 배움에 관하여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저자 : 강남순
출판사 : 동녘
책에도 저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다. 재빠르게 책장을 넘겨가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바삭바삭한 비스킷과 같다면 텍스트에 담긴 깊은 의미를 헤아리며 느린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꾸덕꾸덕한 브라우니 같은 책도 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하는 책이었다. 농도가 짙어서 단숨에 읽거나 이해하기보다 천천히 사유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을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 가르치는 행위와 배우는 행위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라는 것이다.
저자는 교수로서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만, 가르치는 행위와 배우는 행위는 나선형처럼 서로 얽혀 있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한다. 가르치는 것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무형의 지식과 지혜를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또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강연이나 대화에서 만나는 이들을 '살아있는 텍스트(living text)'라 칭하며 그들로부터 배움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두 번째, 무엇도 자명(自明) 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배움은 비판적 성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비판적 성찰은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특정한 것을 배우거나 익힐 때만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전체에 관철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배움-비판적 성찰-일상'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삶에서 직접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스스로 자신의 멘토가 되는 것이다.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사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내 인생의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스스로에게 "멘토는 없다"라고 선언하며 멘토를 갖고 싶다면, 자신이 자신의 유일한 멘토가 될 것을 권유한다. 하나의 개별적인 삶은 누군가가 제시하는 매뉴얼에 의해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이 그린 '삶의 지도'를 그대로 따라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멘토를 향한 '외면적 열망'을 오히려 자신을 다듬고 가꾸는 '내면적 열정'으로 전환하라고 충고한다(268쪽 참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지도를 그리는 것은 외부자인 멘토가 아니라, '치열한 독학'을 견뎌낸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인문학이 주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이란.
때때로 인문학을 접할 때, 내가 가진 가치관이 분명해지거나 견고해지기보다 더 모호해지거나 흔들릴 때가 많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에서는 선과 악의 기준이 분명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들에서는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했고, 현실을 다루는 인문학에서도 역시나 선과 악의 기준은 불분명했다. 수학 공부를 할 때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을 얻고 싶었지만 더 알게 되면 될수록 인문학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위 인문학적 소양이란 치열한 '왜'로부터 시작되어 결국에는 '나-타자-세계'를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의 익숙했던 관점을 뒤흔드는 '내면적 불편함'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간결함과 명쾌함'보다는 오히려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갖게 되고 이것은 우리가 더 넓은 관점을 가지고 더 많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느낌표를 얻기 위해 책을 열지만 결국 책을 덮으며 물음표만 남길지라도 계속 책을 읽고 싶은 이유가 이 불확실한 모호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는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는 상투적인 희망의 약속이나 위로의 말 대신 암흑처럼 느껴지는 절망의 터널만이 존재하는 것을 아님을 인지하는 것. 그 암흑을 바라보는 '나'가 가느다란 햇살을 만들어내어 암흑과 햇살 두 축 사이에서 춤추기를 연습하는 것. 그것이 살아있음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엄숙한 과제임을 알려준 저자의 가르침을 오래도록 곱씹어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