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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Mar 29. 2021

브런치가 뭐길래

connecting the dots. 브런치는 내 인생, 하나의 점.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 올해 목표 중 하나였다. 


몇 해 전부터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 생각은 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다. 사는 게 바빠서 일까. 지레 겁먹어 도전하기 두려웠을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다. 계속해서 미루던 목표를 올해엔 꼭 이뤄보고자 ‘2021년 버킷리스트’에 당당히 적어두었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내 기분은 한없이 고꾸라져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글쓰기’는 커녕 ‘책읽기’도 하지 못했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딛고 어두운 그늘에서 영차영차 나를 꺼내어 따뜻한 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무언가 도전할 여력이 생겼고 그 힘으로 어느 에세이 공모전에 참가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왠지 느낌이 좋았다. 수상하면 상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뭐, 상상하는 건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이 순간을 즐기자!’ 하면서.


그러나 결과는 땡! 탈락이었다. 참여자 전원에게 지급한다던 당사 포인트도 지급되지 않은 걸 보니 지원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 같다. 어쨌든 결과는 탈락. 수상금도, 자존감 회복도 멀리 날아갔다. ‘내가 그렇지 뭐.’ 하고 자괴감이 들 뻔 했으나 ‘그럴수도 있지.’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그즈음에 즐겨보는 SBS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 ‘실패스티벌’을 주제로 한 방송을 보고 위로 받기도 했다. 


‘실패스티벌’은 수많은 실패를 겪은 사람들을 위한 페스티벌을 의미한다. 게스트로 탁재훈, 이상민, 비 등 출연했다.


‘그래. 실패 할 수도 있지 뭐.’


‘저렇게 대단한 사람들도 수많은 실패를 겪었는데, 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어차피 실패했으니 실패에 더 익숙해져보자.’ 


하는 마음으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브런치 작가 꼭 되어야지’ 생각하고 도전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을 처음부터 ‘실패할 테지만, 그래도 해보자!’ 생각했던 이유는 주변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을 종종 봐왔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글을 포스팅하며 블로그나 SNS에서 수많은 팔로워와 구독자를 가진 사람들이 몇 번씩 고배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브런치,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데?’ 생각했던 것이다.


실패를 각오한 마음으로 브런치에 접속해서 글을 저장하고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하루 뒤에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다! 기대는커녕 실패를 각오했는데 이렇게 바로 승인 메일을 받다니!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꺅!”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 브런치 작가 됐어!”


남편은 본인 일처럼 기뻐해주었고 축하해주었다. 우리부부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를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서일까. 아니면 엄마와 아내로만 살던 나에게도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겨서 일까. 나는 정말 ‘뭐’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나 진짜 브런치 작가 된 것 맞나?’

‘이거 브런치 팀에서 실수한 건 아니겠지?’

‘무슨 글부터 써야하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틈에 덜컥 겁이 났다. 남편은 왜 글을 발행하지 않느냐 물었고 나는 대꾸할 수 없었다. 작가 승인을 위해 저장해놓은 글이 분명히 있는데도 글 앞에서 자꾸만 머뭇거렸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다고 해서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강제로’ 읽는 것도 아닌데. 내가 쓰는 글이 당장 책으로 묶어지는 것도 아닌데. 누가 지금 당장 무릎을 탁! 치게 만들법한 근사한 글을 써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이상한(?) 부담감 속에 가둬버렸다.


미루기의 천재라도 된 듯,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외국에 나가 있는 지인과 화상 통화를 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각자 힘을 쏟는 곳에 응원을 보탰다. 그러다 브런치 이야기를 전했다. 


“나 브런치 작가 됐어! 그런데 글을 하나도 못 쓰고 있어!”하고는 민망해서 깔깔 웃어버렸다. 


지인은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는 “점 찍는다고 생각해. 스티브잡스 연설 알지?” 라고 말했다.


“응. 알지! connecting the dots!!”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스티브잡스는 3가지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 중 첫 번째 이야기가 ‘connecting the dots(점을 연결하라)’에 관한 이야기였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당신은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의 점들을 연결시킬 수 없다.)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당신은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 있을 뿐이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당신은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것임을 믿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로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실 우리가 산증인이었다. 나와 지인의 삶의 궤적에는 공통분모가 없었다. 사는 지역도, 나이도, 출신 학교도 모두 달랐다. 평생 서로를 모르고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점은 지인의 블로그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뱃속에 작은 존재를 키워내느라 하루에도 수차례 속을 게워내며 지독한 입덧에 시달렸다.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는 것도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하루하루 신경이 곤두선 채로 지내던 중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같은 증상의 입덧을 겪고 있는 임신부들의 글이었다. 그 당시 나와 같이 임신 중이었던 지인은 블로그에 입덧에 관한 글을 포스팅했고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댓글을 남기게 되었는데 그 시점을 계기로 우리는 오프라인에서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인연의 시작, 지난 만남을 회상하며 지인은 자신이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나와 화상 통화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블로그를 통해 좋은 지인을 알게 되고 다른 일들과도 연결되었다고 했다. 블로그에 글을 남길 때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글을 쓰다가 불현듯 다섯 살 아이에게 읽어주었던 그림책 속의 수학적 원리가 떠오른다. 수많은 점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수많은 선이 연결되어 면이 되는 것. 또한 수많은 면이 더해져 입체적 도형이 완성되는 수학적 개념. 나는 이러한 수학적 원리가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된다고 믿는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내다보며 현재의 점을 연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에 내가 찍어놓은 점들과 지금 내가 찍는 점들이 반드시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것임을 믿는다면 지금 우리가 찍는 점들 중에 쓸모없는 것은 없을 것이다.


브런치 작가가 뭐길래, 지레 겁먹고 아무 점도 찍지 못했던 지난 날의 어리석은 나를 깊이 반성한다. 한 번에 아름다운 선으로 그림을 그릴수도, 입이 떡 벌어질만한 입체적인 도형을 만들어낼 수도 없지만, 어쩐지 하나의 점을 찍는 일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브런치가 뭐냐고?


“점. 내 인생의 하나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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