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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Mar 23. 2021

눈을 감고 달린다는 것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얼마 전 동생이 원하던 회사에 취업을 했다. 나는 동생의 취업을 축하하며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전 재산의 50프로를 사회에 내놓는다는 기부 뉴스를 전했다. 단순히 뉴스 전달자에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동생에게 너도 김범수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회사에서 효율적 시스템을 경험하고 끝없이 배움에 정진하여 후에는 김범수 의장처럼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것을 권유했다. 취업 축하로 시작해서 삶의 이모저모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의 요지는 ‘김범수 의장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였다. 


나는 좋은 의미로 말했지만 동생은 나의 의미를 의아해했다. 그리고 본인은 김범수 의장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본인 이름 석 자를 말하며 ‘그냥 나’대로 이미 충분하다고 앞으로도 나(동생)의 인생을 살 것이라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했다. 동생의 대답을 듣고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아니 많이 부끄러웠다. 나는 왜 이제껏 롤모델이 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을까. 그동안 나는 나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룬 사람과 나를 끝없이 비교하며 그 사람의 모양을 닮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것은 때때로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비교의식에서 비롯된 자책과 절망이 되어 나를 막아서는 벽이 되기도 했다. 


2021년 새해가 밝은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 나는 새롭지 못했다. 과거에 묶여 현재를 즐기지 못했고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했다. 우울의 늪은 생각보다 깊었다.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힘은커녕 해오던 것들도 지탱할 힘이 없었다. 낮은 낮대로 힘들었고 밤은 밤대로 두려웠다.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밥을 잘 먹지 못했다. 마음은 점점 곤고해졌고 몸은 피폐해졌다. 갯벌에 한 번 발을 잘 못 들이면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고 점점 더 깊게 빠져버리는 것과 흡사했다. 나의 중심이 포박되어 온전히 설 수 없었고 이리저리 휘청였다. 


어느 정도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왔다고 느꼈을 때 담담하게 그간의 감정을 적은 글을 SNS에 업로드했다. 과거에 몇 번 독서모임에서 만났던 지인은 나의 글을 읽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댓글을 남겨 주었다. 무엇을 특별하게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눈을 감고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살아보라고도 덧붙였다. 


눈을 감고 달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앞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아 두려울 테지만 이내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해보라는 뜻이었을까. 나는 그분이 내게 전한 마음과 그 의미를 헤아려보고 싶어서 달리면서 진짜 눈을 감아보았다. 행여 다른 사람과 부딪히거나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걱정되어 금방 눈을 뜨긴 했지만 눈을 감고 달리는 찰나의 순간,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

내가 달리고 있구나.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화사의 <마리아>라는 곡에는 ‘뭐 하러 아등바등해. 이미 아름다운데.’라는 가사가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더 가지려고, 더 이루려고, 더 나아가려고 아등바등한다. 이미 태어난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이거늘,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을 롤모델로 정해두고 그 사람처럼 멋진 인생을 살아보려 애쓴다. 


우울이 나를 삼키지 못하도록 몸을 움직이고, 걷고, 뛰다가 잠깐이라도 눈을 지그시 감아본다. 찰나일지라도 눈을 감은 채 뛰어본다. 눈을 감고 달리다가 중간중간 내가 어디쯤 왔나, 부딪힐 것은 없는가, 궁금해서 눈을 뜨게 되더라도 다시 눈을 감아본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어서 달리고 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두운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이 생각에만 집중한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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