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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pr 06. 2021

해가 있는 곳으로

우울에, 어둠에 지지 않을 것이다.

몇 개월 전, 울기만 했던 때가 있었다.

목구멍에 무거운 돌이 턱 하고 들어앉기라도 한 듯 음식을 제대로 삼킬 수 없었고 밤만 되면 심장이 두근거려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낮에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그저 울기만 했다.


끄나풀처럼 잡고 있던 희망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멀리 도망가버렸는지, 내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자책뿐이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의 내 모습은 지난날 내가 선택한 것들의 집합소였다. 과거에 내가 한 모든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신중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매일매일 복기하며 자책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서로를 '벗'이라 여기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인은 나보다 다섯 해의 생을 먼저 살아낸 삶의 선배, 흔히들 '언니'라 부르는 존재였다.)


나는 전화기 너머로 최근 들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마음을 늘어놓았다. 울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을 이어나갈 수 없어서 나는 울었다. 많이 울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으나, 대부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와 같은, 나의 무능력과 무기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벗은 함께 울어주었다. 나를 위해 울어 '준' 것 인지, 이런 내가 가여워서 눈물이 '난'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자신도 힘들었던 때라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 위로가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벗은 울면서 이런 말을 했다.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쩐지 나는 위로가 돼. 나는 나만 혼자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잘 사는데 나만 이렇게 아등바등 버티며 사는 것 같아서 힘들었어. 그런데 나만 이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벗은 나에게 나를 위안 삼아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도 같은 이유로 어쩐지 조금은 위로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날의 통화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같이 울어주는 것, 서로를 위안삼아 자위했던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만든 벗의 한마디였다. 한 시간 넘게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내가 처한 현재와 앞으로 놓일 미래에 대해 어두운 비관만 하던 나에게 벗은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 진짜 무서운 병이구나. 어떻게 너를 이렇게..."


나는 이 말이 기분 나쁘거나 고깝게 들리지 않았다. 평소에 나를 아끼고 애정 하는 사람의 탄식은 무너져 내린 나를 이해하는 첫 단추가 되었다.


'그래. 나는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무능력한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마음이 아파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할 수 있어.'

'지금 내가 아플 뿐이지. 이제껏 잘못 살아왔거나, 앞으로의 남은 인생이 전부 어두운 것은 아닐 거야.'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힘들 만도 해.'

'내가 우울증이어서 그동안 이렇게 비관적으로만 바라봤던 거구나.'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시작하니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의지가 생겼다. 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으며 삶에서 마주한 고난을 버티고, 애쓰고,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래. 누구에게나 삶은 어려워.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이겨낼 힘이 있어. 나에게도.'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어쩌면 나에게도 이 아픔을 이겨낼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믿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1.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일 것.

혼자 있고 싶어도, 집에서 혼자 있지 말고 집 앞 카페라도 나갈 것.

어두운 공간에 나를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것.


2. 몸을 움직일 것.

무기력해도 몸을 일으켜 움직여 볼 것.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탈 것.

해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갈 것.


나와의 단순한 약속이었지만, 혼자 웅크려 있지 않고 볕을 쬐며 몸을 움직이는 것은 우울감을 쫓아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가끔씩 내게 남아있는 우울의 잔상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나를 다시 삼켜버리려고 할 때마다,

나는 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우울에, 어둠에 지지 않을 것이다.


뚜벅뚜벅.

해가 있는 곳으로.


우울이 빚어낸 어두움은 해가 뿜어내는 빛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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