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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출어람 Jan 08. 2019

말년

군생활 중 백미는 말년에 있다.

전역을 앞둔 병장은 근엄한 모습보다는 장난기가 있어야 하고 후임병을 괴롭히지 않아야 한다. 이러하다 보니 말년은 병장 계급의 후임병에게 때론 구박을 받기도 한다.    


최얼음 병장은 말년이 되자 특유의 장난기를 점호 준비로 바쁜 청소 시간에 자주 발동시켰다. 군기 잡힌 이등병들을 한 내무반에 모두 모아 두고 눈 네모, 세모 만들기 놀이를 하였다. 이등병들이 내무반 바닥 정리와 상병들 마대 걸레질을 위한 물 뿌리기 지원을 해야 하는데 말년이 방해하는 격이다. 그리고 침상 위에서 이 놀이를 하다 보니 일병들이 하는 침상 정리도 방해가 되었고 일병들이 이등병 몫까지 해야 했다.    


“오늘은 눈 세모, 네모 만들기 훈련을 시작하겠다. 모두, 눈 네모로 만들어~ 어서~ 눈 네모로 만들어. 눈 세모로 만들어. 어? 못 만드네? 눈에 힘주고. 눈 네모로 만들어. 눈 세모로 만들어. 어? 어? 된다. 된다. 눈 네모로 만들어~ 눈 세모로 만들어”    


최얼음 말년은 자신의 양 손가락을 까치발 같이 구부려 이등병들의 눈앞에 두고, 장난기 가득한 눈을 하곤 반복해서 눈을 네모와 세모로 만들어 주기를 신병에게 주문했다. 절대 눈 모양을 세모, 네모로 만들 수 없음에도 이등병들은 얼굴의 모든 근육을 이용하여 눈을 세모와 네모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무엇보다 이등병들이 힘든 일은 눈 모양을 만드는 것 보다 웃음 참기이다.

  

“또 말년 청소 방해하고 있네... 어? 신병이 웃어? 빠져가지고?”   


"..." 


“야! 너도 눈 네모로 만들어~ 당연히 웃기지. 맞지 얘들아? 올~치~ 눈 네모로 만들어~ 눈 세모로 만들어... 올치! 올치~”  

  

모두 웃음을 참아가며 눈을 네모로 그리고 세모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잠시나마 이등병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는 시간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말년 : 전역을 앞둔 서열 1위 병사

#빠져가지고 : '빠졌다.'을 말하고 ‘군기가 빠졌다’를 줄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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