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뤘던 정신과를 간다. 혹시나 어떤 얘기를 물어볼까 상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야지 하고 정리한다. 급한 일들이 있어 찾지 못했다고 먼저 선수친다. 의사는 큰 표정변화가 없다. 약에 대한 부작용은 없었는지, 약을 먹고 나서는 어땠는지 물어본다. 좋아졌다고 대답했다. 말이 빨라졌어요. 예전에도 말을 빨리 했는데 그 떄 속도로 돌아간 거 같아요. 또 의사발언도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귀찮았는데, 요새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해요. 약을 먹은 뒤 잠을 자지 못 했다는 내 대답에 의사는 오전에만 약을 먹으면 되고 신경안정제는 필요 없을 거 같다고, 우울증 약만 주겠다고 했다. 진료는 빨리 마무리 되었다.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가면서 생각한다. 그래, 이 사람은 의사야. 나의 상태를 보고 진단을 하는 의사. 상담사가 아니야. 그는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중략)
사실 급한 건 없다. 일은 내일 출근해서 처리해도 큰 문제가 없는 일이다. 다시 쉬는 날에 일을 하는 것이 좋아졌다는 것은 내가 좋아지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상이다. 나는,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말 많이 빨리. 그것은 분명히 좋은 변화이겠지만, 100%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순 없겠지. 비슷한 상황을 맞뜨리지 않게 또 경계하면서 살겠지. 그래도 수정 보완 그리고 a에서 a’가 되는 과정이었으면 한다. 부디.
// 240219_병원투어 ㅣ 다행히 굿뉴스들(일기 발췌)
소화불량을 꽤 오래 앓았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위기능장애. 정신과 약은 진짜 나랑 안 맞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다시 나를 돌볼 수 없을 정도로 바빠졌다. 개인적이던, 업무적이던. 7일 중 하루 쉬는 주가 생기지를 않나, 끊임없이 뭔가 일정이 생긴다. 어제는 그 핑계로 학원도 쨌다. 도저히 연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레슨 받기 싫어서. 어차피 그렇게 레슨 받아도 돈이 아깝다면 차라리 쉼을 택하리. 조금, 아깝긴 하지만 별 수 있나. 너무 정신없는 와중에, 업무 중에는 계속 채널이 바뀐다. 라디오 주파수 돌리듯. 카톡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3-4가지 이상의 대화들에 어떻게든 정신을 팔지 않기 위해서 나의 머리와 손은 또 시작이다. 하루에 몇 번이고 캘린더를 체크하고, 7~8월달까지 체크하고, 다시 바탕화면에 메모장이 수없이 깔리고, 거기에 적힌 텍스트를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다. 미리미리 체크하지 않으면 도미노처럼 일이 밀릴 거 같아서.
// 240315_마음안다는것(일기 발췌)
며칠 전에는 소화가 되지 않는 것을 포기하고라도 약을 다시 먹어야 되나? 싶었다.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에 에너지가 쓰이고, 오래 쓴 핸드폰처럼 1%로 집에 도착해서 방전된 채 종료가 된다. 끝없는 어둠과 고요함은 나를 좀먹는다. 벗어나야지 하는 생각은 찰나, 나는 한없이 심해로 갈아앉는다. 다시는 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나홀로 남겨진 순간을 사랑하게 된다.
// 240521_내마음이왜이런지모르겠어
생각보다 약의 효과는 놀라웠다. 복용을 시작하자마자 스스로도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효과가 나타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하루아침에 달라진 내 모습에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다’
약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귀찮게 느껴졌고,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 하는 체념에 가까운 생각들이 많았다. 그런데 약을 먹고 난 뒤에는 다시 의견이 생기면 제안하고, 나서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말도 부쩍 빨라졌다. 내가 느끼기에도 확연할 만큼.
하지만 문제는 부작용이 컸다. 원래도 약한 편이었던 소화기관이 버텨내지 못 했다. 매끼니마다 소화제를 챙겨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소화가 되지 않았다. 당시 정신의학과와 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이 사진과 같았다. 하루에 한 번이긴 했지만, 저 많은 약을 몸에 밀어 넣는 것이 맞는 일인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소화 불량의 원인은 알고 보니 담석증이었다. 결국 나는 담낭절제술을 받게 된다. 하하. 건강검진, 정말 중요하다.
결국 심각한 소화 장애와 조금 나아졌다는 바보 같은 낙관 속에서 나는 약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역시나,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늘 반복한다. 목까지 차오른 업무에 정신없이 몰두하기 시작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일정을 강박적으로 확인하고, 매번 점검하며 머리를 쉬지 않고 굴렸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바쁜 것이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바쁨의 표면 아래, 다시 좋지 않은 상태로 가고 있다는 걸 나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눈치채고 있었다.
약을 끊고 두 달 뒤, 나는 정확하게 약을 먹지 않던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 있었다. 주말이면 다시 침대로 숨어들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온 신경은 날이 서서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 예민함이 목덜미를 조이듯,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이대로 깨어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그러다 심연으로 가라앉기 직전, 나는 본능처럼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발버둥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