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습작] #후회 - 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by 수빈

스팸으로만 가득하던 받은 메일함에, 갑자기 들어가 보고 싶어진 건 왜 였을까. 내심 답장을 기다렸던 마음마저 낯설어진 지금,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답장을 받았다. 파랗고 굵은 글씨로 모니터 위에 떠 있는 제목. 마치 얼른 읽어 달라고 재촉하는 듯했지만, 나는 선뜻 메일을 클릭할 수 없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은 공포였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리석은 과거, 그리고 8년이나 지나버린 지금의 내가 또다시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는 마음. 떨리는 마음과 똑같이 떨리는 손을 간신히 움직여 겨우 메일을 클릭했다.


-안녕, 잘 지내?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까 고민했는데, 나도 8년 전 너처럼 인사 먼저 건네게 되네. 너도 그땐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잠을 잔 건지, 깨어 있었던 건지. 머리가 멍한데 몸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저 꿈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중에 씻고, 나와서 옷을 갈아 입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고. 문득 머리를 넘기다 거울 건너의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처럼 준비했는데, 어쩐지 오늘의 나는 너무 꾸민 듯 했다. 입꼬리가 스르르 내려갔다. 본능처럼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지만, 맨얼굴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찌질해 보이고 싶지도, 그렇다고 눈에 띄게 꾸민 것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고, 머리가 아팠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못 알아 보면 어쩌지’―라고 하기엔, 겨우 8년이었다. 분명 나를 알아볼 것 같았고, 그래서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도망칠 수 없었다. 차 안에서 내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한 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바라보며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몇 번이나 바랐다. 결국 약속 시간 10분 전, 질끈 눈을 감고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에서 카페까지는 가까웠지만, 발걸음이 무거워 억겁의 시간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손을 뻗으면 카페 문이 닿는, 두세 발걸음만 걸으면 들어갈 수 있는 그 거리 앞에서 나는 다시 멈췄다. 돌아갈까. 머리 속에서 수십 번이나 재회의 순간을 상상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힐난하는 그녀, 혹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하는 나. 지금 여기서 도망가면, 앞으로 그 기억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그 마음 하나로 카페 문을 열었다.


“이야, 너는 진짜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냐. 스무 살이라고 해도 믿겠다.”


카페 안에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당황한 나는 급하게 움직여 그녀 맞은 편에 앉았고, 그녀의 너스레 섞인 웃음에 조금 놀랐지만, 그 웃음이 ‘내밀어진 용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너도 하나도 변한 거 없는데, 뭐.”


목소리가 떨릴까 봐, 표정이 이상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래도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한 내가, 그럴싸하게 말도 주고 받았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쑥스럽게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같았다.


“미안. 나 목이 말라서 먼저 먹고 있었어. 너는 뭐 마실래?”

“아, 그럼 내가 사올게.”







“운전 조심하고.”


다음에 또 연락해도 될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쳤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녀를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시작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아까보다 조금 가벼워졌다. 차 문을 열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기분 좋은 음악을 찾으려는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오늘을 마지막 만남으로 하자. 너도, 나도 오늘로 불편한 마음은 내려놓았으니까. 이걸로 충분했다고 생각하자.


알림창으로 잠깐 떠올랐던 그 문장은 곧 사라졌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정확히 다 읽었다.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제 만난 친구처럼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너는, 끝내 ‘연락하자’는 말도, ‘또 보자’는 말도 없이, 조용히 ‘잘 가’라고 인사를 남겼다. 그 인사를 곱씹으며, 나는 나의 멍청함에 혀를 깨물었다.


나는, 말이야. 그저 내 죄책감을 덜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라. 너와 다시 잘 지내고 싶다거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었어. 직접적인 내 탓은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당긴 방아쇠로 네가 상처를 받은 입은 건 분명하니까. 그래서였어. 내 마음속 불편함을 없애고 싶어서, 그걸 덜어내고 싶어서 너에게 손을 내민 거야. 그 마음이 얼마나 가벼웠던 것인지, 너는 금세 눈치챘던 거지. 결국 나는, 같은 자리에 또 한 번 너를 다치게 만든 거야. 너는 두고두고 기억이 나고,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고, 너무 잊고 싶은데 분하고, 화나고, 어이가 없어서. 그 모든 불편한 마음을 나에게 돌려주고 싶었을 거야. 최대한 너다운 방법으로. 그리고 최대한 어른스러운 방법으로.


여전히 너무 어렸던 내가,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던 내가, 이상한 희망과 꿈의 나라를 상상했던 바보같은 내가, 너는 얼마나 어이 없었을까. 평생 보고 싶지 않았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너의 맞은 편에 앉아서, 네가 웃으면 따라 웃고, 너의 말에 맞장구치고, 마치 그때처럼 별일 없다는 듯 앉아 있는 걸 보며 넌 얼마나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까.


나는 정말 멍청하게도, 너랑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너에게 온갖 욕과,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 먼저 연락하고 만나자 한 건 좋은 신호 아닐까? 내가 조금만 참으면, 네 마음이 풀리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어리석은 희망을 품었던 거지. 너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잊고 싶은 기억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니,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어리석게 믿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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