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상점이나 가게의 얼굴이다.
상가나 가게가 줄지어 있는 곳에서 필요한 곳 찾을 때 묻거나 들어가 보지 않고도
간판만으로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오래된 상가건물이다.
바로 옆에 세탁소, 그 옆에 곱창집, 떡 방앗간, 정육점이 나란히 한 줄로 서있다.
한 번씩 업종이 바뀌면서 새로 태어난 듯한데, 세탁소 간판만 나이 들었다.
주인장의 경력과 반비례하는 늙음이어서 가장 모양새가 빠졌다.
내 맘을 읽었나(?)
세탁소 앞마당에 늙은 간판이 쭉 뻗어 누웠다.
오늘 새 얼굴로 탄생할 모양이다.
어느 날, 사장님께 여쭤봤을 때 그 자리에 20년이 훨씬 넘으셨댔다.
강산 수십 번도 더 바뀌는 동안, 그 자리에 계셨다니
OO동 국수거리의 산 증인일 테다.
사장님은 이른 아침 나와 비슷한 시간 문을 여시고,
퇴근은 내가 먼저 할 때가 많다. 퇴근이 정확히 몇 시인지 몰라도
늦게까지 일하시는 거다.
공간은 우리 사무실과 똑같다.
열 명이상 들어와도 충분한 울 사무실과 달리
겨우 한사람 앉아 일할 수 있는 세탁소.
“사장님, 옷, 옷이 왜 이렇게 많으세요?”
머리 위부터 온 사방이 드라이 한 옷과 수선할 옷으로 내리누르는 듯
몸과 맘이 답답하지 않나 싶어 여쭈어 보았다.
“안 가져가. 넣어둘 곳이 없댜~.”
그 말만으로 모든 것이 읽혀졌다.
우리 집도 봄에 맡겼던 옷을 반팔 옷이 싸늘하게 느껴지던 불과 얼마 전,
배달해 달라 했으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신기한 것은 좁디좁아 반쪽 엉덩이 걸칠 자리 겨우 하나 있는 세탁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거다.
누구 하나 앉기 뭐하니 모두가 밖까지 밀려나와 서 있는데,
“아하하 어허허!”
웃음소리 끊임없이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동참한 듯 같이 웃고 있다.
지난 무더운 여름날, 냉장고, 에어컨 하나 없이 선풍기에 몸을 식히며
일하는 모습을 지나가다 보았다.
아버지 같은 나이시라 가끔씩 얼음 동동 띄워 커피 한잔 타 드리면,
그제서야 파묻고 계셨던 고개를 한 번 드시곤 하셨다.
“사장님, 개업하고 간판 처음 바꾸시는 거죠?”
“아녀~ 네 다섯 번 갈았~어.”
“에게게... 그런데 이렇게 낡은 거예요?
이왕 하시는 거 좀 좋은 걸로 하시면 오래 쓰실 수 있을 텐데요.”
“이미, 늦었어...”
비싼 돈을 들여 좋은 거 하면 오래 쓸 수 있어 좋은데,
나이가 있어 한 달일지 일 년을 더할 수 있을지 모르신단다.
내가 보태줄 것도 아니면서 더 값진 걸로 해야잖냐고 계속 말할 수 없었다.
“사장님, 새 간판 달고 20년은 더 하실 수 있겠어요.”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바꿔보려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하~~~허허허!!!”
긍정과 밝음의 사장님 환하게 웃으시더니 이내 말씀하셨다.
“근데, 눈구녕이 안 보여 그렇게 못 혀.”
<<<<<<<<<<<<<<<<<>>>>>>>>>>>>>>>>
괜히 그 말이 쓸쓸히 다가왔다.
언제부턴가 나도 돋보기 없으면 신문이나 책을 볼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컴퓨터나 휴대폰 화면의 어지간한 글자 크기만으로 모자라
크게 더크게 확대하고 있는 거다.
신문이나 많은 자료의 양을 휴대폰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 글자 크기를 다른 사람이 볼 때면 정말 깜짝 놀란다.
난 눈을 찡그려 보지 않아서 좋고 편한데...
눈구녕, 그래 눈구녕이 안 보여서 오래 못한다는 말이
사장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어서 더 쓸쓸했나 보다.
휴대폰을 달고 사는 젊은이들 중 30대에 노안이 와서
불편함을 겪는 이들도 많아졌다는데,
나도 나지만, 휴대폰을 달고 사는 애들이 너무 걱정되었다.
손톱 밑 가시 하나에도 아프고 거슬려 신경이 쓰일 때가 많은데,
보는 것이 안 될 땐 불편함과 할 수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다.
“사장님 눈에 좋은 영양제 드시면 오래 일할 수 있어요!”
“그럴까? 하하하!!”
늘 호탕하게 웃으시는 사장님 곁이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구나!
좋은 에너지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니 말이다.
오후 4시 넘어서야 밑간판 최대한 살려 제작한 간판 사장님,
‘행운 컴퓨터 세탁’이란 새 얼굴을 들고 사다리로 오르신다.
숨어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어디선가 나타난 마징가 제트처럼!
비를 들고 쓱싹쓱싹 어질러진 가게 앞을 쓸고 계시는 웃음 멤버들
20년은 거뜬히 일할 수 있다고!
‘행운 컴퓨터세탁’ 사장님으로 남을 수 있다고!
당당히 벽에 걸린 간판이 말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