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어떤 모습일까.

by 서비휘

흙 속에 봄이 들어앉았다. 동네 한 바퀴 돌다 키 높이 담장 너머 텃밭에서 막 올라오기 시작한 꼬물이들과 두 눈이 마주쳤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빌라 옆 작은 자투리 공터를 이용해서 거주하는 주민들이 가꾸는 모양이다.

지난 주말, 토독톡톡 비 오더니 촉촉해진 땅 속 적당히 씨앗을 품에 안았다. 꽃상추, 적상추, 시금치, 나머지 이름은 이파리 더 밀어 올려봐야 알 거 같은데...


한 밤, 한 밤 또 한 번의 주말, 씨를 품던 날과 똑같이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빗방울 스며 씨앗 품은 흙을 만났나 보다.

‘그래, 이때다!’

돌돌 말려 고압축 시켰던 씨앗 속 초록 잎들 내 세상 만났다. 아기 손 흔들 듯 환호의 손짓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다가가 쪼그렸다. 담장 너머 줄지어 선 걸로 봐선 군기 바짝 든 신입 장병 같은데, 가까이 보니 보드라운 아가 잎들. 내리는 빗방울로 물 샤워하느라 까르르 깔깔 눈도 못 뜬다.

지금쯤 우리 텃밭의 주말농장도 품을 한 아름 열고 있을 테다. 그이는 어느덧 초보 농사꾼 딱지 떼도 될 정도인 4년 차에 접어든다.

‘에미는 떡을 썰 테니 아들은 붓글씨를 쓰거라.’ 불을 끄고 각자 솜씨 겨루기를 하며 아들을 깨우치게 했던 한석봉의 어머니만큼은 아니라도 해보고 싶은 공부를 하기로 맘먹고 책을 붙들던 4년 전 봄날.


주말이면 같이 움직이던 일이 갑자기 없어지니 허둥대는 듯 보였다. 이내 할 일을 찾은 듯 회사에서 운영하는 텃밭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30여분 달려가야 자리한 한적한 시골 농장으로.


울 시엄니 친정이 복숭아와 단감 과수원부터 농사에 지을 수 있는 온갖 종류는 빼곡히 하는 곳이었으니. 시엄니는 기본 솜씨 있어도 방학 때면 외갓집 가서 먹고 뛰놀며 본 것이 전부였으니 농사엔 별 관심 없었던 엔지니어인 그이.

주말농장 1년 차엔 4평 정도 되는 땅에 상추만 잔뜩 심었다. 돈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장난감 총처럼 주말마다 갈 때면 뜯어도 뜯어도 밀고 올라오는 상추 상추 잎들. 깨끗이 씻어 봉지에 담아 같이 공부하는 동기생께 나눠주고 나눠줘도 푸짐했던 첫 해.


2년 차엔 알록달록이 옥수수에 도전. 옥수수를 좋아하는 울 따닝의 입김에 야심 차게 준비했을 아빠의 손길이었을 테지. 잘 익었을 옥수수가 도착되어 거실에 펼쳐놓고 껍질을 벗기던 순간, 1년 웃을 웃음을 그날 호탕하게 다 웃었다. 촘촘히 알알이 박혔을 옥수수의 가지런함은 오데로 갔나 오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군더더기 살 쏘옥 뺀 매끈한 자태만이 있는 옥수수와 새 이 하나 쏘옥 올라온 아기 이 같은 옥수수가 대부분이었으니. 다 까서 삶아도 옥수수 한 자루 양이될까 말까 했던. 계란 노른자로 친환경 살충제를 만들어 뿌려주던 정성 갸륵했던 2년 차였는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서당개도 3년이면 맹자왈 공자왈을 읊을 정도이니.

주말마다 보고 들은 것이 있지. 역시 사람이었거늘 서당개랑은 비교할 게 못되었다.

텃밭 자리부터 어디로 찜해야 할지 알았다. 첫 번째가 물 대기 좋은 곳으로. 한강을 왜 민족의 젖줄이라고 했는지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알게 되었으니. 경험치란 밥이 되고, 돈이 되고, 산지식이 되는 게 맞는 말이다.

상추와 옥수수가 대부분이던 것을 종류도 가지가지 넘치지도 과하지도 않을 만큼 무엇보다 적당히 적당히 가능했다. 토란, 아욱, 애호박, 고추, 가지, 감자, 대파, 꽃상추, 적상추, 당근, 방울토마토 등

하나씩만 심어도 네 평땅 차겠네. 이쯤이면 농산물 시장에서 다루는 모든 품목은 있다고 봐야 하나.


4평이 4천 평이라도 되는 듯 지지대, 장화,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가 아침이면 문 앞에 줄줄이 배달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이번 주말 출동을 기다리며 두근두근 발코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울 텃밭에 안길 품종은 울 따닝이 좋아하는 알록달록이 옥수수와 짭짤이 토마토를 많이 심어 달랬고, 나머지는 내가 주문할 품종을 가족 톡에 올렸다.

그이는 그 많은 걸 어디 가서 구해야 하나 한 곳에 없을 거 같아 고민하는 모양이던데...

곧 만날 씨앗과 모종들. 고랑과 이랑 사이에서 흙을 뚫고 때로는 헤집고 나올 힘찬 기운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