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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May 18. 2021

4박5일 전 기억 소환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최고로!!

시간은 느림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맘껏 걷지도 뛰지도 못하며 아기처럼 굴 때가 있다. 시간은 나한테서만 멈춘 듯 느릿느릿 간다. 4박 5일 병원생활, 뒷걸음치듯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보는 일 살면서 흔치 않은 일이기에 기억을 더듬어본다.    


“히야, 우리 엄마 잘한다~ 참 잘했어요.”

서른은 넘었을 테고, 마흔은 안 된 듯한 아들이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칭찬 중이다. 


팔이 저리다며 한 살 응석 부리듯 말하니 혼자 손을 흔들흔들해보라는 말을 다정하게 건넨다. 괜찮아졌다고 말한 뒤 3초쯤 지났을까(?) 발이 너무 시리고 춥다고 이야기하니 보조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아들이 얼른 몸을 일으켜 양말을 신겨드린다.  

  

3인실 병실에 다음 날 수술을 위하여 난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을 찾았다. 병실 입원까지 여러 차례 진료와 검사를 거친 뒤 예약된 날. 코로나 음성 받은 팔찌 띠를 두르고 안내해 주는 10층 1018호실.    


여러 번 세탁해서 낡은 환자복이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병실 커튼을 치고 침대 위에서 갈아입었다. 병실에 먼저 입원해 주삿바늘 꽂고 계신 분을 보니 수술 전이라 딱히 아픈 것도 아닌데, 환자복을 입는 순간 아픈 사람처럼 행동이나 생각, 말도 느려지는 듯했다.     

커튼을 치고 수술 전 불안하고 두려운 맘을 잠재우려 박완서 님의 수필집을 펼쳤다. 두 눈은 책을 보고 있는데, 열린 귀는 일자로 놓인 침대 앞의 어머님과 아들의 대화에 기울이고 있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 목소리에 묻어나는 맘 소리 덕분이다.   

 

어머니의 몸 상태로 봐선 오랜 병상에 계셨던 것이 한눈에 보였다. 옛 말에 긴병에 효자 없댔는데, 짜증과 귀찮음의 기색을 1도 찾아볼 수 없음이 신기했다. 하루 이틀 지낸 것도 아닌 것 같고, 마음과 다르게 몸이 지치면 툭툭 내뱉듯 명령조로 얘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내가 이상한 건가.   

 

그들 모자간의 대화를 듣는 내 맘에 안타까움은 많았지만, 동시에 편안함도 느껴졌다. 내일 수술을 앞둔 상황이라 누가 봐도 무서움에 떨고 있다는 게 느껴졌을 테니. 대개 아들이 병간호를 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고, 나 또한 아들이 오기로 예정된 상태라 더 눈여겨봐 졌는지 모를 일이다.    


어둠이 내리고 깊은 밤이 되자, 어머니의 상태가 대충 짐작이 갔다. 좀 전에 아들이 여러 번 가르쳐주고 일러주는 어떤 말도 기억을 못 하는 거다.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난 아들에게

“누구야?”

“엄마 며느리”

“며느리가 누군데?”

“내 아내.”

“아내가 누군데?”

“나랑 결혼한 사람. 엄마가 말하믄 아나? 얼굴 봐도 모를 걸. 좀 전에 보여줬었잖아.”     


아, 이건 말 배우는 한 살 딸아이와 대화 수준. 숨죽이며 듣는데, 내 가슴이 미어졌다. 아들의 긴 한숨소리가 가끔씩 새어 나오는 걸 듣고 있자니 내 맘도 같이 무너져 내리는 듯 아팠다.    


딸의 이름인 듯 뭐라고 엄마가 더듬거렸다. 아들은 누나 이름인 것을 알아채곤

“누나 보고 싶어?”

사진 좀 보여주라고 말하면서 질문이 또 이어진다.


“애는 없어? 잘 살어? 애 하나야? 누구랑 살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네.” 

하나하나 묻는 말에 대답을 다 듣던 엄마는 딸이 잘 살고 있다는 말에

“누나 착하네.”    


취침하라고 불을 껐는데도 계속 말을 걸어오는 엄마로 옆 침대 환자에게 방해가 될까 아들은 조심스레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 왔다.    

“괜찮습니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말씀 나누세~요. 힘드시겠지만, 어머님 챙기는 모습 정말 보기 좋으세요...”    

현재 엄마 나이 69살. 5년 전 고깃집 장사하다 갑자기 쓰러지셨단다, 뇌출혈로. 한시가 급한 상황. 충남 서산이라 뇌수술을 할 수 있는 큰 병원을 찾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반신 마비에 치매까지 와 버려 5년간 요양병원 계셨단다. 아직 60대시고 오랜 병상에 누워서도 고우신 걸 보니 젊었을 때 정말 미인이셨을 분.   

  

작년부터 코로나로 면회가 일절 안 되는 상황에 어머니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MRI와 CT촬영 등 종합검진이 필요하던 차 무엇보다 가까이서 어머니를 간호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었단다.    

 

누나랑 같이하는 청소사업은 그나마 시간을 자유로이 뺄 수 있고, 누나가 대신해 주면 되니까 도맡기고 병원엘 와 있는 거. 반신 마비라 힘쓰는 아들이 도움될 거 같다는 판단이었단다.     


음식물 섭취 대신으로 몇 번이고 빼버려 다시 코에 호수를 꽂으셨고, 대변은 기저귀로 소변 줄과 다른 링거 등 생명줄에 의지해 살고 계신 어머님에 대해 듣다 보니 맘이 착잡해졌다.     

식구들이나 가까운 이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사는 날 건강하게 제 몸 건사하는 일 참 중요하다는 오만가지 생각까지.      

  

“막내야,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큰 일났네.”

“기저귀에 누래니까 기저귀 차고 있어.”

“정신이 말짱한데, 어떻게 여기서 싸?”


.....................................................    


“막내야, 똥 마려 미치겠어.”

“엄마, 화장실에 가서 싸면 안 돼. 똥 묻은 기저귀 갖다 줘야 해. 검사해야 하거든. 내 말 이해했어?”    



누워서 아들 앞에 똥까지는 못 싸겠다는 엄마와 그것쯤은 충분히 치워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그냥 누라는 절규에 가까운 아드님 맘이 안타까워 꺼이꺼이 울다 소리가 새 나올까 봐 금식을 위한 수액 링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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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훌쩍 어깨 들썩임을 눈치챈 안내석의 간호사님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 일어서 다가오신다. 

“어머님과 아드님이 하시는 얘기 듣는데요, 너무 안타까워~서요.”

딸 같은 간호사님이 어깨를 토닥이다가 등을 쓸어주시는데, 위로는 나이 많은 사람만이 하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가까스로 맘을 진정시킨 뒤 병실 침대로 돌아가 누운 뒤에도 어머님과 아들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여기 어디야?”

“병원”

“가야지. 왜 여깄어?

“어딜 가?”

“어디든 가야지. 여길 왜 있어?”    


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집에 가 본 적 없으니 집이란 단어도 잊어버린 걸까. 어머님이 계셔야 할 곳은 이곳은 아닌 거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할 곳도 모르고 계신 그곳과 아들 앞에선 끝까지 똥을 누지 못하겠다는 어머님의 마지막 자존심이 어우러져 화장실 가고 싶단 얘기로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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