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는 꽃들

다 같이피어나지 않아도 된다.

by 서비휘

“애들이 왜 우리만 가야 하냐며 계속 물어봐요.”

7세 반 아이들 중 한글을 아예 모르는 다섯 명만 따로 주중 한 번 수업해 주길 원장님께선 원하셨다. 따로 살짝 보내려는데, 똑띠들인 반 친구들이 자꾸 물어온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다섯 명인 아이들은 왜 우리들만 보내는 것이 되는 것이고.


'너희들이 내년이면 학교 가야 할 친구들인데, 한글을 몰라 따로 나머지 공부하는 거란다.’

이런 말을 어떻게 하느냐는 듯 긴급 돌봄선생님께선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다섯 명의 친구를 처음 만나던 날 의심과 불안, 기 눌림으로 엉거주춤 걸어 들어오며 다른 친구들은 자유 놀이하며 놀고 있는데, 왜 우리만 와야 하냐고 따져 묻듯 입을 열었다.

“원장 선생님께서 오며 가며 잘 지켜봤는데, 인사도 잘하고 옆 친구를 잘 도와주는 친구 다섯 명을 뽑아 특별히 부탁하셨어. 마음이야기 일주일에 두 번 해주라고.”

조금 전의 표정이 싸악 밝아졌다. 으쓱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다행히 친구들이 놀리듯 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들어올 거 같다. 잘한 행동 칭찬해 주기 위해 따로 뽑힌 친구들이므로.


그렇게 우리 다섯 명의 친구들은 한글의 기본이 되는 자음과 모음을 시작으로 가갸거겨 고교 구규 그기를 노래로 불렀다. 드문드문 글자 속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글자가 나올 때면 얼마나 반갑게 아는 체를 하는지. 나도 같이 신기한 걸 발견한 듯 탄성을 지를 정도였다.


“나는 마음이야기 하러 한 번 밖에 안 가는데~~.”

놀리듯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지금이라도 나머지 공부해야 단체 할 때 겨우 따라갈 텐데...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거리 되면 어쩌지 크게 걱정했던 부분. 알만 한 거 다 아는 7세반 친구들이라 놀림 당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으며 배우게 하는 게 쉽지 만은 않다시며 원장 선생님, 오며 가며 마주칠 때면 늘 물어보셨다. 이번 주는 어떠냐며.


원장 선생님께선 다섯 명의 아이들 중 H가 지금은 참 많이 좋아진거라신다. 다섯 살 때엔 어떤 말 한마디 못했다는 것이다. 꾸준한 언어치료를 바탕으로 지금은 어눌한 발음이긴 해도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만도 많은 성장이 있었다는 거.

글자공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천천히 알게 해 주시면 된다며 어머님께서 정말 고마워하신다는 거다.


원장님의 얘기를 듣는데, 몇 년 전 우리 반 아이였던 L이 떠올랐다. 2학기가 시작되던 9월에 합류되었던 L. 세상 생긴 말이라면 다 따라 하며 익히던 반 아이들 나이에 L은 달랐다. 눈 맞춤이 안 되고 엄마라는 말도 못 할 뿐 아니라 늘 교실바닥에 누워서 지내려 했다.

의자에 앉는 것도 힘들고 바닥에 앉는 것도 더 안 되며 아무 데나 누워 버리는 거다. 말이 안되니 불편함이 있을 때면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기도 해서 다들 깜짝 놀라곤 했다.

울 반 아이들은 누워있는 새로 온 친구를 피해 빙 둘러 다녔다. 다 그렇게 해주면 좋으련만... 한두 명의 짓궂은 남자 애들이 선생님 눈을 피해 배를 밟고 지나가거나 일부러 뚝 치고 다니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깜짝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는 거다.


배를 밟고 지나간 아이들의 엄마에게 연락드렸다. 그중 한 어머니께선 다음 날 수업이 시작되기 전, 교실로 찾아오셨다.

모든 아이들 앞에서 아들과 함께 그 아이한테 사과를 하고 싶다며. 그 순간 난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이런 아이를 왜 받아 반분위기를 흐리게 하냐 소리치지 않고.

보기 드문 자녀사랑 교육 뼈대가 반듯한 어머니를 눈앞에서 보았기에.


외할머니께서 L을 매일 등, 하원 시켜주셨다. 자녀 둘을 S대 보내셨다며 자부심이 대단하셨던 분. 아드님은 의사로, L의 엄마는 Y대 교수라며 세상 부러울 게 없이 사셨단다. 어깨 쭈욱 펴고 다니시다 손자를 보면 온갖 세상 고민 다 짊어진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손자를 받아주겠다는 원이 없었다는 거. 상담할 때 아이의 상태에 대해 상세하게 말 안 하고 들어갔다가도 하루 이틀 만에 데려가 주셔야겠다는 얘길 들었다는 거.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돼서 안 되겠다는 거였다. 아이가 안 나가면 선생님께서 더 이상 못 다니겠다고 하니 원장님께서도 어쩔 수 없었을 테지.


그 외할머니의 이 원이 마지막이다! 더 이상은 울 손자가 갈 곳이 없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고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L이 다니기 전보다 몇십 배는 힘이 들었다. 나도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원장님께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나의 주치의 슨생님으로 불리는 조카랑 통화를 하게 되었다. 고모가 그 아이를 외면해서도 안 되며 도움이 될 수 있는 데까지 돌봐주길 원했다. 동료 선배 의사 선생님들 아이들도 그런 아이가 제법 있다는 얘기와 함께. 임신했을 때 스트레스가 아이한테까지 가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란다.

그러면서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외국의 어느 식당에서 아이가 밥을 먹다 포크와 숟가락을 집어던지는 일이 벌어졌단다.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저 아이를 혼내거나 쫓아내지 않고 뭐하냐며 주인에게 소리치자, 주인은 돈은 받지 않을테니 아이 때문에 음식 먹기 곤란한 사람들은 나가주시기를 정중하게 부탁드렸단다.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았던 건지, 아무것도 모르고 한 아이 행동을 어른이 이해해야 한다고 한 건지 기억나지 않는데, 주인이 한 행동에선 놀라웠다.


힘이 드는 건 다를 바 없어도 조카랑 통화 후 아이를 더 품어주려고 했다. 야외학습 때는 위험을 모르고 찻길을 들어가거나 모서리 끝부분 위에 서 있다 보니 간이 철렁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집에서도 야외 나갈 때면 유모차를 항상 태워 다녀야 했단다. 어디로 달려갈지 몰라서. 다음 야외학습 때부터 가정학습으로 한대서 한결 마음의 짐이 가벼워졌다.


다른 반 누나가 다니는 언어치료실에 L도 같이 다니게 되었단다. 의사 선생님 면담 시 엄마, 아빠가 들어와서 선생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에 비해 L의 아빠는 진료실엘 한 번도 들어가지 않으셨단다. 병원까지 같이 가서도. L의 엄마도 교수직을 관두고 아이 뒷바라지해야 하지 않을까 매번 고민하셨단다. 그럴 때마다 친정엄마이자 L의 외할머니께서 무섭고도 단호하게

“그런다고 애가 달라져? "

그 딴생각 집어치우고 학교생활 열심히 하라고 했단다. 어떻게 공부해서 따낸 Y대 교수직이냐며.

2학기가 끝나고 다른 연령으로 올라갈 때 선생님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서로 자기 반에 L이 들어올까 봐. 원장님은 고민하시다 오래 일하신 선생님 반으로 배치를 하였다. 그러나 결국 신학기 들어 며칠 다니지 못하고, L은 쫓겨나가다시피 했다. 담임 선생님이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하니.


L이 떠나가던 날, 외할머니께선 우리 반 교실로 올라오셨다. 인사라도 드리고 가고 싶었다며.

그러면서 평생 선생님을 잊지 않겠노라 말씀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우리 반에서 일 년 더 있더라도 높은 연령으로 올라가지 않고, 일 년을 더 돌봐주겠다며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학기 초엔 어린 연령 한 명씩 끌어안고 달래기도 버거운데... 여러 명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L을 붙들고 있을 자신이 없었던 거다.


결국 L은 떠나갔다. 길에서 외할머니가 끄는 유모차를 타고 산책 다니는 중에 한 번 만나고 그 후론 만나진 못했다. 그 동네서 멀리 이사 와서 더 보기 어려울 수 있다.


L에 비해 이 유치원에서 만난 H는 훨씬 나은 편이다. 발음이 어눌해도 친구들이랑 소통하는 데, 문제없고 떠듬떠듬 느리게 느리게 익히고 있으니!!


H와 함께 다섯 명의 아이들이 웃으며 들어선다. 어깨에 뽕이 들어간 듯 자신감이 한껏 올라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 가겠다고 살짝 나와선 다섯 명이 있는 옆자리에 밀고 들어와 자기도 같이 하고 싶다고 조르던 친구. 불과 얼마 전 자기는 마음이야기 시간 한 번만 간다며 놀리듯 말하던 친구가 같이 앉아 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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