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뭐라고 말했는지 한 번만 더 말해줘.”
말 잘하는 7세 반 형님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세 번째 묻고 있다. 달라지지 않는 일정한 톤으로 하는 대답이라 계속 못 알아들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아아~~~.”
그냥 알아들은 체했다. 가뜩이나 학기 중간에 만나 아직은 어색할 수 있는 사이. 그들이 말하는 말까지 못 알아먹어 서먹한 분위기 만들 수도 없고. 무슨 말인지 알면 검색이라도 해 볼 텐데... 옹알이도 아닌 것이. 아 몰랑가도 아니고 도대체가 모르겠고. 못 알아듣겠다.
7세 반을 만나던 날부터 자유놀이 시간 열심히 그리는 아이들이 무슨 알 수 없는 형체를 그리길래 뭘 그렸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듣지 못했다.
무슨 그림이라고 너도나도 옹알이 비슷한 말을 하는데, 알아들은 척을 계속하고 있었던 거다.
오늘도 역시 K가 심혈을 기울여 그리고 있다, 그린 그림은 눈도 코도 귀도 없고. 눈 가까이 백미러 같은 걸 쓰고 있는 모습을 그려내곤 뿌듯해했다. 양쪽 발도 없고 두 다리와 등줄기 뒤쪽으로 몸통만 한 게 붙어있는.
이상하고 요상하게 생긴 모습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주 익숙하고 친근해하며 좋아하는 캐릭터일 테니 계속 그려주는 것일 테다.
“K야 무얼 그린 거니?”
알 수 없는 말로 옹알이하듯 또 대답을 한다. 순간 대답과 동시에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게 눈에 들어왔다. 아하~ 바로 알아차리고 말았다.
[AMONG US]
그랬다. 모두들 옹알이하듯 입 안에서 동그마니 말한 게 저 어몽 어스란 말이었다는 걸.
K가 입고 있는 옷의 캐릭터와 그린 그림이 닮아 있다. 영어로 친절히 적혀있기 까지. 그동안 아이들은 어몽 어스라고 대답한 거였다. 처음 들어봤던 말을 옹알이처럼 또 얼버무리는 듯한 말을 못 알아들었던 거고.
여러 색으로 나타내 보인 캐릭터와 우주인이듯 외계인인 듯,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구나 싶다.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는 두 눈과 입이 있지 않던가. 디지몬이나 포켓몬스터들도 눈, 코, 입들은 있었던 거 같은데... 숨 쉬고 먹고 마실 입과 코. 바라봐야 할 눈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콕 박힌 내 두 눈에 담긴 낯선 모습이 거부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옛날 사람이 따로 존재했던 게 아니다. 신문물이 늘 낯설고 몰라보면 옛날 사람인 거다.
사고의 틀이 활짝 열려있는 이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고. 간극이 이렇게 벌어져 있는 이 아이들과 조금씩 다가가기 위하여 마음이야기 수업 준비를 하며 음악을 찾는 동안. 촉촉한 눈물이 차오르는 행복한 순간을 몇 번이나 맛보았다.
21C 미래를 사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 이야기 듣는 걸 극도로 힘들어한다. 내 말만 하고 싶어 한다. 한 번쯤 들어봤거나 들어본 적 있는 것은 시시해하고 딴짓으로 바로 돌변할 수 있는. 서슴지 않고 다 아는 걸 왜 하냐며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싫증도 빨리 내서 날씨만큼 빠르게 놀이와 학습의 변화를 주어야 한다.
살다 보니 알고리즘이 좋을 때도 있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음악을 알아서 데려오는 것인지. 같은 곡도 연주자와 연주되는 악기에 따라와닿는 느낌이 다른 음악을 찾은 것이다.
유치원에서 대빵 형님들인 일곱 살 우리 형님들이 보일 반응이 궁금했다. 내가 느꼈던 것 이상으로 어린 가슴들이 촉촉해지길 바랐다. 살아내기 위해 바짝 말라가는 어린 영혼의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해 주고 싶었다.
집에 가면 공부할 게 스무 가지가 넘는다며 한숨을 푹 내쉬는 D의 가슴에도. 친구가 말만 걸어오면 “시끄러워!” 자기 말 외엔 누구의 말도 듣기 싫다며 흰동자를 더 많이 내보이는 H의 가슴에도. 축구하다 지겠다 싶을 땐 억울함의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G가슴과 모든 친구들의 가슴이 촉촉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바쁘거나 빠르고 잽싸게 달리고 쿵쾅대며 으르렁대는 만화 캐릭터에 익숙한 친구들에게 영상물 없이 두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씨앗부터 시작해 큰 나무든 작은 나무가 되어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스카프 하나로 온몸을 음악에 녹여내며 눈을 감고 땅 속에 묻혀 추운 겨울을 지나고, 따듯한 봄날 싹을 하나하나 틔워내는 몸짓이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나려 했다. 뭔지 모르고 장난스럽게 시작했던 H와 Z 점점 빠져들고 있다. 교실 밖을 지나가시던 원감님을 아름다운 선율이 이끌었나 보다.
성장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뙤약볕에 축 늘어지고, 천둥 번개에 온 몸을 흔들어댈 때 들어오셨다. 정말 울창한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라며 감탄을 하셨다.
음악과 함께 작은 몸동작 하나 했을 뿐인데, 상상이 터져 나왔다. 황금나무, 말하는 도토리나무, 개구쟁이 나무, 용감한 나무, 황금나무, 사과 복숭아 과일나무, 귀요미 나무, 행복한 나무, 여기도 나오네 옹알이 같은 이름인 어몽이 나무, 곤충이 사는 졸참나무.
행복한 나무에 등장하는 곰 어린니와 토키 어린니를 보며 웃음이 쿡 나왔다. 공용과 공용아이. 공용이라 하지 뭘 어렵게 공룡이라 해 가지고 발음하기도 어렵게.
신기하게 아이들 모습이 반영되어있다는 게 느껴진다.
용감한 나무를 상상한 L은 슈퍼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여자 어린이다.
나머지 그룹의 아이들은 어떤 나무를 상상해 낼지 벌써 궁금해진다.
어몽 어스를 못 알아먹었던 옛날 사람과 일곱 살 아이들과의 교감은 이렇게 하나씩 스며들고 있다. 열리다 말고 떨어지거나 썩지 않고 아름답고 울창한 큰 나무로 자라 알이 꽉 여문 나무로 자랄 수 있게 햇볕이든 물이든 바람이나 천둥, 번개 어느 것이든 되는데, 조금이 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