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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l 31. 2021

내리사랑

사랑은 흐르는 것이다.

택배가 왔다. 금방이라도 한 입 베물고 싶은 빨간 속살과 검은 씨가 알알이 박힌 수박 그림이 그려진. 아주 큰 수박도 쑥 들어갈 높이와 깊이의 상자로 주문 제작한 듯 안성맞춤인 크기다.


포장지를 뜯어보니 충격 완화를 위한 에어팩이 위아래로 깔려있고. 둥근 수박이 흔들림 없이 제자리에 잘 앉힐 수 있는 치질 방석 같은 것도 깔려 있다. 쿠팡을 통해  배달된 수박은 긁히거나 치이거나 찌부림 하나 없이 특상품의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배달되어 왔다.


또 하나의 택배가 연이어 왔다. 네모난 스티로폼 상자에선 차가운 물이 새 나온다. 꽁꽁 얼려 넣은 얼음이 녹아내린 거. 가만히 있어도 등 뒤로 땀이 줄줄 흐르는 날이니 진해에서 서울까지 1박 2일 걸쳐 오는 동안 녹지 않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


청테이프로 꽁꽁 싸매 붙인 상자 이음 부분을 칼로 잘랐다. 신문지로 하나하나 돌돌 말아 싼 것이 차곡차곡 들어앉았다. 사랑의 보물창고처럼. 덮어놓은 신문지 한 장 들추면 껍질과 뿌리를 제거한 대파가 나오고, 또 한 장 들추니 상추와 호박, 한잎 한잎 포개 묶은 깻잎.

완두콩보다 30배 큰 방울토마토가 비닐봉지에 담겼다. 짭짤이, 큰 토마토 종류도 다양하게 많은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양이 꽤 많은 걸 신문지로 덮었건만, 찌그러거나 벌어진 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잘 자란 것들이 그대로 들어있다. 토마토를 하나하나 꺼내 담는데, 몸속의 물기가 눈 주위로 몰려들었다. 툭 치면 톡 떨어질 이슬방울처럼 그렁그렁 맺힌다.


텃밭농사 지어보니 예쁘고 잘난 녀석만 열리고 맺히는 게 아니다. 터지거나 한쪽만 도려내면 한쪽은 성한 것도 많이 나왔다. 그런 것을 골라냈을 테고 어무이는 그런 것을 드실 테지. 좋은 것만 골라 담은 게 분명했다. 그 맘이 택배 상자 속의 모든 보물이 말해주는 듯 맘이 찡하고 울컥해졌다.


진해 어무이 댁에서 서울 집 도착까지 많은 장소와 손을 거쳤을 테고, 취급주의라 해도 한 두 집도 아닐 테니. 조신하게 다룬다 해도 쉽지 않았음에도 밭에서 금방 따온 것 마냥 알알이 다 살아있음이.

물로 씻어 방울토마토와 큰 토마토를 아드닝과 따닝 방에 주기 위해 접시에 담고 있다. 빨갛고 탐스럽게 잘 익고 매끈하게 예쁜 것만 담고 있다.

볼품없이 못난 것은 내 입으로 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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