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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l 31. 2021

뭐라카노!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사랑스럽거늘.

“뭐라카노!”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기억하는 갱상도 말이 툭 튀어나왔다.


“내년에는 호박 따윈 안 심는다고. 밭에 있는 애들을 다 망쳐 놓잖아.”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천지 분간 못하고 돌아다니는 애들처럼 여기저기 툭툭 튀어나와 밀어붙이는 덩굴손을 거칠게 다루며 그이가 말했다,


“내가 하께. 가만 냅~둬라.”

고춧대와 가지대 지난번 새로 심은 쪽파, 그이가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토마토 순까지 뻗치지 않는 곳이 없는 덩굴손을 이리저리 눈에 띄지 않게 감추느라 바빴다.


도발적으로 당당히 쭉쭉 뻗어나가는 기세가 얼마나 드센지 가지대도 고춧대도 맥을 못 추고 옆으로 눕다시피 비스듬히 기울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작은 애기 호박 하나 달고 나오는 모습이 기특하고 반가워 악수라고 나누고 싶은 맘. 그이는 완전 눈엣가시처럼 대한다.

다칠세라 넘어질세라 다른 애들을 다룰 때와 다른 거친 손길과 전에 보지 못한 씩씩거림 동반한 투덜거림을.


그이는 옥수수와 토마토에 엄청 정성을 쏟았다. 그런 덕에 지난번 옥수수 수확기를 제때 맞추지 못해 먹지 못한 것 빼고도 수확량이 엄청나다.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많고 맛이 쫀득쫀득 얼마나 좋은지. 아주 큰 솥이 없어서 여러 개씩 삶고 또 삶아 냉동실에 넣었다.

왕래만 가능하다면 나눠줘도 될 사람들이 많은데...


토마토 키가 [아빠 달님을 따주세요] 나오는 사다리만큼 기다랗게 오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년생인 토마토가 나무보다 더 클 수 있는 거였다. 덩굴손이 없다 보니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고 지지대를 대주는 만큼 계속 올라갈  수  있는  거.

지지대만 이어주면 끝없이 오를 수 있는 게 토마토인 거다.  이름도 토마토 앞으로든 뒤로든 끝없다는 말일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열린 알의 굵기와 품질 향상 위해 몇 단의 순이 나온 뒤엔 고수들 꼭대기에 순들을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초보들 한 잎 한 잎 소중하고 귀해서 자르지 못하고 순들 나오는 거 다 받아들여 안고 가니 그야말로 새순끼리 뒤엉켜 엉망진창에 알의 크기도 자잘한 거였다.


초보 딱지 뗀 주말농장 4년 차인 그이 손길 거친 토마토도 제법 고수의 위엄을 보인다. 그런 위풍당당한 자태로 토마토를 익혀내고 있는 중 도발적인 자세로 덩굴손을 앞세워 왕창 달려들 듯 호박순이 떼로 몰려와 휘감거나 밀치고 있으니 그이가 단단히 부화가 난 거다.


내 눈엔 귀엽고 대견하며 복스럽고 탐스럽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이쁘다고. 자기 새끼들이 더 이쁘니 니들이 건들기만 해 봐라! 내가 혼쭐 내 줄 테다.’ 그런 으름장 놓는 그이처럼 보인다.


농장 10년 차쯤 된 사람들은 호박들의 성향과 기질을 알아채고 하늘 높이 뻗어오를  지지대를 모종 때부터 높다랗게 세웠다. 그런 상황을 처음 보는 난 이제 눈 뜨는 싹들이 자라면 얼마나 자란다고. 저렇게 높다랗게 뻗어 올린 것들이 뭔가 했다.


오로지 울타리도 없이 옥수수 옆자리 땅을 기어 다니며 복스런 맷돌 호박을 키워낸 게 얼만큼인데. 지금 이 순간 자라고 있을 것들이 얼마나 대견한지.

[참 잘했어요!] 칭찬 도장과 함께 표창장 줘도 시원찮을 판에 내년에 심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다니.


호박들이 듣지 않았을까 쪼그라드는 쫄보가 되었다.

‘너희들 신경 쓰지 말거라. 어무이가 지켜줄 끼다.’


‘맷돌, 맷돌, 맷돌호박! 귀에 못이 박히도록 노래 불러 주면 그이는 알았다 알았다 시끄러워서 안 되겠네.’

맘껏 타고 오를 울타리를 쳐 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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