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듣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하고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까지 마치고 나더니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 말을 듣는데, 내 기분이 날아갈 듯한 건 뭐지?’
머리에 뿔을 단 듯 자기 맘에 들지 않을 땐 언제 어디서든 들이박을 준비된 친구들처럼. 목에 핏대 세워 보이고 두 주먹 불끈 쥐며 두 눈의 흰자를 더 많이 보이는 친구들이 한여름 농작물 자라듯 늘어난다. 그들 중 K는 자분자분 말하며 또래들 중 온순한 편에 속하는 거다. 자기주장이 없진 않고 목소리 크지 않으며 조용하게 말하는 남자 아이.
둘 중 어느 한 친구가 양보하면 그런 상황까지 일어나지 않을 텐데, 어느 하나 물러설 생각 없으니. 꼭 분쟁까지 가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거다.
이동수업을 갈 때도 맨 앞자리 잽싸게 서야 하고, 화장실에서 손 씻고 나와 간식을 먹으러 갈 때도 맨 먼저. 어쩌다 맨 앞자리를 다른 친구가 차지하고 들어서 있으면 자기 분이 올라오는 것을 못 이겨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고. 승부욕이 강한 만큼 자신감도 넘쳐 자기편이 지겠다 싶을 땐 얼굴이 빨개지며 그렁그렁 눈물까지 나오는 걸 팔꿈치를 치켜올려 닦고 있다.
우리 아들 또한 그 만했을 때 예외가 아니었기에 그때는 늘 실랑이 거리였지만, 지금 그 어떤 몸짓이나 뿔냄도 귀엽고 우습기만 하다. 그 맘이 어떤 맘인지 충분히 알 거 같으니.
7세랑 얘기할 땐 나직나직 조근조근 말해선 먹히지 않는 것이 함정. 어지간해선 화를 내지 않을 거 같으니 만만하게 대해도 될 선생님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모기 한 마리 날아다니니 그걸 잡겠다고 헛손질의 손바닥을 쳐대는 개구쟁이 녀석. 몸을 날리니 그 순간만 기다렸다는 듯 동참하는 녀석이 나타난다.
블루투스가 열일 해 준 덕분에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1도 안 쓰고 집중해서 듣는 애들이 더 많아 다행이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몸놀림이 재빠르고 신체활동을 좋아하고 즐기는 친구들이 정적인 활동시간엔 듣는 것도 쓰는 것도 좀 힘들어한다.
글을 써 내려가다 모르는 글자가 나오자 K가 어떻게 쓰냐며 물으러 왔다. 글자 아는 녀석들 중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가만있을 리 없다.
“아 그것도 몰라? 느에서 ㄹ이잖아.”
'모르는 것을 알려주기보다 그 쉬운 것도 모른다니. 아휴, 쯔쯧.' 그런 맘이 더 많이 숨어있는 듯하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나하나 물어가며 쓰는 아이들은 한 바닥을 가득 채워가며 써 내려가고 있다.
좀 전에 그것도 모르냐며 알려줬던 녀석은 한 줄도 못쓰고 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덧붙이는 말
“나는 다 쓸 줄 아는데, 쓰기 싫어서 안 쓰는 것뿐이야.”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하면 잘하는데 안 해서 그런 것뿐.
잘 쓰면 두말없이 쓰면 될 것이지, 잘 쓸 수 있는데, 안 쓰는 것뿐이라니. 글자 모르는 아이에게 핀잔이나 주면서 말이다.
친구들 중 누군가 놀리든 말든 아랑곳 않고 모르는 글자 계속 물어 가며 열심히 쓰는 친구들이 기특하 고 대견해 보여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게 된다. K는 그런 기특하고 대견한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자신 없어 못하면 어쩌지 걱정하는 맘도 있었나 본데, 해보니까 별게 아니구먼을 알고 재밌게 잘하는 K 같은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거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