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와 넓이를 잴 수 없는

by 서비휘

하늘이 높고 바다가 깊은 만큼 높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품을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추석날 시아버님 산소에 성묘하러 가기 위해 마당에 차를 주차했다. 선산 아래 운영하는 어느 산중 식당의 마당이다. 박 씨 문중의 선산 아래라 그런지 명절 때면 식당 주인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마당에는 어미닭과 병아리 10마리가 졸졸 따라다니며 어미가 땅을 앞발로 헤집어 놓으면 병아리는 뭔가를 쪼아 먹고 자리를 옮기면 쪼르르 뒤따르는 모습에 눈길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었다.


작고 여린 것의 앙증맞음, 귀염을 다 갖고 있는 병아리들과 어미닭은 성묘를 다녀온 후에도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가족들이 마당 벤치에 앉아 쉬는 동안 내 두 눈은 그들을 계속 쫓고 있다. 10마리들 중 한 마리는 저만치 갈 만도 하건만, 어미가 얼마나 단단히 일렀으면 자리 이탈 하나 없이 어미 주변에서만 땅을 헤집으며 다니는 거다.


[순간, 번쩍 열렸다 닫혔다.]

정말 눈 깜짝할 새란 말이 있듯 1초에도 큰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그때 알았던 듯. 주변에 나타난 들고양이를 보았나. 병아리들의 생명 위협을 느꼈는지 어미닭이 날개가 쫘~악 펼쳐 그 많은 병아리를 순식간에 날개 속으로 숨긴 것. 안전지대라고 느낀 병아리들도 털 끝 하나 보이지 않고 꼭꼭 숨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조금 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상황 종료 뭐 그런 느낌이랄까.'

위협을 느낀 1초 동안 본 깃털의 곤두세움은 우아한 공작 날개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힘찬 기운이 있었다.


그 후론 품을 떠올릴 때면 어미닭이 펼쳐 보였던 병아리를 숨기던 그 품이 뚜렷이 떠오른다.


얼마 전 보았던 부추 꽃봉오리도 그 품 못지않았다. 봉긋이 핀 꽃대 끝에 매달린 한 송이 안에는 소복하게 한소끔 꽃봉오리들이 들어앉은 듯 터질 때가 된 듯 부풀었다.

세상에 내보낼 때가 되어서야 꽃송이를 감쌌던 보쌈주머니가 톡 터지는. 그 주머니가 꽃송이의 품 안이었던 듯싶다.


요즘 7세 반 아이들이 하나둘씩 품에 안겨온다.

그러면 난 어미닭의 품과 부추꽃을 감싸던 그 품이 떠오르는 것이다.


지난 유월,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땐 억울함과 분노에 가득 찬 듯 대들 듯 따져대는 아이들이 무서웠더랬다.

매일 정원놀이터나 큰 놀이터에 나가 바깥놀이를 할 때 축구시합에서 일어나는 갈등 원인이 큰 듯 싶다.


같은 편에 하고 싶은 친구가 다른 편으로 배정될 때부터 못마땅. 시합이 시작되어 자기편이 지고 있거나 하지 말아야 반칙을 쓰는 친구로 인한 속상함. 너도 나도 옐로카드, 레드카드란 말이 수십 번 나오고. 그 말을 들은 체 않고 계속 공을 몰고 다니는 아이로 인한 씩씩거림. 경기는 계속되고 있고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 행동이 다 맘에 들지 않아 눈물까지 삐죽삐죽 삐져나오는 상황들이 되풀이되는 걸 보면서 도무지 어찌해 줘야할지 고민이 됐더랬다.

그들은 지금 자아가 마구마구 성장하고 있는 것도 한 몫하는 것일 터 맘의 상처 주지 않으며 도움 줄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어느 편이 이기든 상관없는 친구들만 있으면 갈등이라곤 없을 텐데, 지고는 못 배기는 친구들이 많을수록 목소리는 커지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그중에 눈물까지 보이는 친구들이 있는 거다.


억울하고 분하다고 느끼는 친구들은 우선 나와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상대방의 친구와도 마찬가지인데, 그 친구 또한 부글부글 끓어올라 할 때가 대부분이다. 눈을 마주보면 조금 전까지 이글이글 못 참을 만큼 끓어올랐던 순간들이 어느 찰나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친구는 잠시 앉아 생각하는 시간을 준다. 아직 아이라고 느껴질 때가 그럴 때다. 얼른 놀고 싶은 맘에 생각해 봤다며 슬며시 다가오는 것이다.


7세 반 담임 선생님들의 넓은 아량과 사랑으로 아이들은 개성을 살려가며 잘 지내는 듯하고 마음이야기 시간을 통해 하나 둘 내 맘인 지도 몰랐을 걸 끄집어내어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 더할수록 아이들은 넉넉하고 마음의 그릇을 넓혀가는 것일 테다.


잠시 피신하는거든 꽃 피울 때가 될 때까지든 품을 찾는 이들에겐 언제든 꼬옥.

품 안은 분노, 화남, 속상함과 슬픔도 잘게 부숴버리고 맘 그롯을 크고 단단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으니까.


마음 그릇을 크고 단단하게 넓혀가다 보면 작은 분쟁거리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길 고, 아량과 품을 넓혀가는 넉넉한 맘 갖기에 도움되게 더 많이 품어주고 안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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