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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Oct 25. 2020

       폴리를  만나는 시간

 지금 쯤  지나갈 시간인데, 집을 보여주고 온 사이 지나가 버렸나(?)

사무실 창 밖 전화번호 사이로 고개를 빼내 봐도

문을 빼꼼 열어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매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속에서 혼자만의 작은 설렘이 있었다.    

느지막이 찾아온 내 마음의 일렁거림. 한 마디 말을 나눠보지 못했다.

우람하고 온순하게 잘 생긴 것과 이름, 좋아하는 놀이,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내보이는 버릇이나 습관 정도 아는 것이라곤 이것이 전부이다.    


 그 애를 알게 된 건 얼마 전, 사무실 앞이 시끌법적해서이다.

사람소리 자주 나는 세탁소 앞이었고, 친한 이웃 친구 분들 여럿 오셨나 했다.

보통 때 같으면 이쯤 되면 뿔뿔이 흩어져 갈 시간이다.


 꽤 오랫동안 주고받는 말소리가 끊이지 않아

고개 들어 내다보니 평소 보지 못한 새하얀 털이 언뜻 보였다.    

궁금해서 일어서서 나가보았다.

털이 복슬복슬 몸집이 아주 큰 개 한 마리가 많은 이들이

보여주는 관심과 사랑에 꼬리를 흔들며 화답을 하고 있는 거다.  

  

 큰 개를 본 건 초등학교도 다니기 전이었다.

그 개는 우리 집 마당 한 쪽에 아버지가 손수 지어준 작은 단독 주택에 살았다.

이름은 순심이 나이는 열 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에 살고 있었으니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당시엔 강아지나 개는 마당 한쪽의 작은 집에 살았지

집 안에 같이 지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순심이는 집 식구들을 잘 알아채고 낯선 이가 오면 컹컹 짖는 거다.

밤늦은 시간 경비나 방범활동을 했던 일등 공신이었다.

집 안의 방들이 미닫이 문으로 되어 있어 한 밤중 깊은 잠에 빠진 시간은 

바깥세상 사람들의 무단침입도 가능한 뻥 뚫린 집이나 다름없었다.

철문으로 된 대문이 있다고 하나 손으로 밀어 벌어진 틈으로 살살살 밀어주면 

금방 열렸으니.

좀도둑도 있을 때라 우리 집에서 순심이의 숨은 활약은 굉장한 것이었다. 

   

 어느 날, 집 안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무슨 상황인지 우리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거였다.

부모님의 마음에 맞춰 언니,오빠들은 분위기를 읽고 대처하고 이해하는 데, 

소통 또한 되는 나이였고,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 나이였다.

다만, 기억나는 것이라곤    

같이 살던 순심이를 이사 가야 할 어딘가로 데리고 갈 형편이 못 되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십 년 이상 같이 산 순심이와 헤어질 생각에 가족들 마음이 다들 편치 않았을 거다.

물론, 나도 좋지 않았다.

 ‘순심이를 어루만지며 이 집이 팔리지 않으면 평생 같이 살았을 텐데... 

어딜 가든 잘 살아야 한다.’    

 순심이도 우리 가족과 헤어지기 싫었던 걸까?

 어찌된 일인지 그 집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

  고맙고 감사하게 우리 가족은 순심이랑 더 많이 같이 살다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었다.   

 

 눈, 코, 입이 반듯하고 어질고 순하게 생긴 폴리 녀석을 보니 불현 듯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에 독채 얻어 살았던  또하나의 우리 가족  순심이가 생각났다.  

    

 폴리 녀석은 집 안에서 같이 지내는 식구 중의 한 명이라고 했다.

집 안에서 같이 놀고 싶을 땐 장난감을 입에 물고 와 

주인(엄마나 아빠) 앞에 내려놓는단다. 

한참을 놀아주면 혼자 잠시 지내다가 심심하다며 밖에 나가자고 칭얼거리며

목줄을 물고 온다니.

고것, 참 영리하기까지 해서 더 많이 이쁨 받고 사랑 받는 모양이다.    


 폴리 덕분에 그 집 식구들은  돌아가며 동네 산책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 쉽게 말문 트고 이야기 나누기도 좋다고 했다.

  

 우리 집 아들 녀석도 한 동안 강아지타령 해대서

한 마리 들여놔야 하나 잠시 고민도 했건만, 요즘은 잠잠하다.


 이전에 말할 때와 다르게 아들 녀석도 성인이 됐으니 

키울 시간과 경제적 능력이 갖춰졌을 때, 얼마든지 들여도 좋을거라 했더니

그럴 모양이다.   


 바람 차가운 요즘,

털이 복슬복슬한 폴리를 보니 따듯하고 정감이 더 간다.

순하고 어질게 생긴 폴리. 

길가다가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맘을 붙들고 감탄의 말로

한 마디씩 보태며 쓰다듬고 교감 나누는 시간! 모두가 기다리는 시간일 테다. 


 매일 비슷하게 지나는 시간 나또한 기다려지는 걸 보니

그 새 정이 들고 길들여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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