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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Sep 07. 2021

맷돌호박 졸업은 또 다른 모습의 시작

매력 있고 아름다운 호박이었으라!

올봄부터 가을이 밀고 들어올 때까지 가장 긴 시간 우리 텃밭을 주름잡았던 건 당연 맷돌호박들 가족이었다. 그이가 심은 애호박과 맷돌호박 섞어 모종 6개. 하룻밤 자고 날 때마다 그들의 번창을 아무도 못 말렸을거란 걸 토요일 아침 텃밭을 찾을 때마다 느꼈었다.


지난 초여름 애호박과 맷돌호박은 연하고 보들 할 때부터 담백한 밥상 위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소소한 밥상 위 반찬 선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거다. 호박잎 쌈, 호박 된장찌개, 호박잎 된장국, 호박나물. 호박꽃 튀김 등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호박 사랑에 푹 빠져 지냈다.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 후 힘겨워 보이기 시작했다. 호박 줄기 시작점부터 누렁이 호박들 꼭지 부분까지 당당한 몸짓 어디로 갔나. 버틸 만큼 버틴 듯 금방이라도 꼭지 부분을 건들면 폭 안겨올 기세다. 그렇더라도 내 손으로 따내질 못하며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래 사랑하다 헤어지는 연인처럼.


그이는 아무 감정 없이 똑똑 잘도 따내었다. 그이에겐 여름 내내 당근, 고추, 가지, 잘 뻗어 오르는 토마토 줄기를  괴롭힌 녀석으로 기억할 테니. 그들의 태생을 이해하고 그물을 쳐 주신 주인장의 텃밭에도 넘어온 녀석들이 많던데, 무방비로 열어두었으니 지극히 당연했던 거. 호박들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거였다.

초보 농사꾼의 무지가 빚어낸 결과일 뿐.


그이가 어울렁 더울렁  서로 엉켜 있는 호박 줄기를 한꺼번에 훅 걷어갈까 봐 힘겨워하면서도 뻗어 올린 여린 잎들을 한 잎 한 잎 따내면서 말했다.

“너희들 모두로 인해 풍요로웠고, 행복했고, 불도저 같은 힘이 불끈 주어졌다고. 정말 정말 고맙고 많이 감사했다며.^^**”

그렇게 넓은 세력 펼치며 기세 등등했던 우리 텃밭의 주인공 호박넝쿨과 누렁 호박들 호박잎을 따는 시간을 가지며 천천히 졸업식 같은 의식을 마쳤다.


여름 바다 거센 파도보다 더 세찬 힘으로 밀고 들어오던 그 줄기들을 상하지 않게 밀어 넣어도 넣어도 금세 자라 밀어붙이는 그 힘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그 많은 벌들은  또 어디서 날아들 왔던고.


더운 여름날보다 맛은 덜하지만, 그들의 정성이 갸륵하여 호박잎을 냄비에 쪄내었다. 올 가을 계절 인사도 건네며.

크고 작은 누렁이 호박들 건강원으로 보냈더니 정성 들여 달여 호박즙으로 탈바꿈시켜 우리 곁으로 다시 보내주셨다.

 집에 있던 작은 누렁이 호박이 물컹해져 더 상할까 봐 냄비에 쪄 내었다. 달큰한 노란 즙이 나왔다. 버리지 않고  먹게 되어 다행이다.


요번에 딴 누렁이 호박 한 덩이는 눈 오는 겨울밤 아름답고 구수한  호박죽으로 탄생시켜 줄 예정이다.

생각만 해도 기쁘고 설렌다. 텃밭에서 눈 맞춤으로 서비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맷돌호박들의 사랑은 그 후에도 쭈욱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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