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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Sep 27. 2021

구령붙여  하나, 두울, 셋넷

달빛산책 중에 난데없는 구령붙여 걷기라

달빛 산책 중이라 주위가 어두컴컴했다.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려봐도 가로등 불빛이나 카페나 상점 불빛이 있는 곳만 사물이 보일 뿐. 한적한 곳은 여전히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사물들도.


자기만의 보폭을 유지하며 느긋하게 걷던 중 어두운 공간 속의 실루엣으로 보아 예순은 족히 됐겠다 싶은 분께서 큰 소리로 구령을 붙이며 걷는 것이다.


“하나, 두울, 셋, 넷   하나, 둘셋넷 하나둘셋넷”


한 반 분량의 사람들이 함께 줄 맞춰 뛰는 팀이 있을 거 같은 목소리 톤이다. 혹시 뒤따라 걷는 팀원이 있나 싶어 살펴봐도 홀로 걷는 모습이다. 현직이 조교이거나 아님 전직이 조교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던 중 내 발걸음은 왜 각을 잡고 양팔은 겨드랑이에 붙어 있는 것인지.


구령 소리만 듣고도 몸의 균형이 잡히는 나를 본다. 느릿느릿 걷는 걸음에 구령 하나 얹혔을 뿐인데, 왠지 앞사람에 발맞춰 걸어야 할 거 같고, 혹여 엇박자로 걷고 있었을지언정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셋넷에 발을 맞추면서 걸으면 되는 거였다.


중, 고등학교 체육시간 시작 전에 우리들은 두 줄 맞춰 운동장을 돌아야 했다. 체육선생님께서 학기 초에 미리 정해 주신 규칙이었던 거 같은데, 몸 풀기의 일환이었나 보다.

이따금씩 반장이 붙여주는 구령 소리에 제멋대로 뛰던 발을 맞추며 왼발, 왼발 입 밖으로 소리 내며 맞추어 뛰기도 했다. 그러면 그 구령 소리로 힘도 덜 들고, 몇 바퀴였는지 모를 운동장 돌기도 금방 끝이 났던 거 같다.



달빛 산책에 여유와 자유가 좋았고, 느긋함과 느슨함이 좋았다. 그럼에도 낯선 이의 씩씩하고 우렁찬 구령 소리에 발맞춰 걷고, 온몸에 주어지는 각 잡히는 힘이 싫지 않았다.


살면서 느리고 여유 있는 삶도 좋지만, 이따금씩 누군가 꽉 잡아당기듯 끌어주며 손 잡아주는 조교 같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나에게 조교 같은 역할을 하는 이는 그이이기도 하지만, 맘의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잘하는 거 다섯 가지, 못하는 거 다섯 가지라면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정리정돈이 잘 안 된다. 늘 바삐 바깥활동하며 산 삶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정리정돈 잘하는 사람은 버리는 것도 잘해야 하는데... 버리기가 잘 안 된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나중에 한 번이라도 쓰일 거 같은 거다.  

조카들이 많아서 물려받았던 책들과 아이들 보던 걸 얹혀 보내고 팔아도 많은 것이다.


거기다 언니 하나에 올케언니 셋, 시집간 조카들이 몇 명이냐. 그 많은 이들이 막냇동생에게 막내 이모, 막내 고모에게 죄다 입던 옷들을 보내주는 것이다.

옷장에 든 옷보다 보내주는 옷들이 철철이 많고, 살짝살짝 나도 옷 사는 것 좋아하니 줄어들기는커녕.


계절이 바뀔 때면 하루 종일 정리한다는 게 이쪽 칸에서 저쪽 칸으로 자리 이동만 시킨다며 식구들이 보기엔 아무 변화가 없다는 거.

아, 난 하루 종일 정리정돈이라는 이름으로 정돈 정리를 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줘도 잘 안 될 판인데. 헌 집이라 안 되는 게 아니라 새집 가도 안 된다며 단정 짓는 조교의 태도로서 삼가야 할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길 위에서 모르는 이의 구령에도 발맞춰 잘 걷는데, 집에서 조교가 정리정돈의 솔선수범을 보인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조교님 정리정돈의 진수를 보여주시와요. 정리정돈의 이등병인 저는 조교님을 따라 하겠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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