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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Sep 28. 2021

라떼의 계절이 돌아왔다!

웃음 추억 생각나는 계절

덥다 덥다 하며 누가누가 살갗 더 많이 내놓기 대회라도 하듯 벗고 살던 때는 지났나 보다. 여름에 살갗을 태워야 건강한 겨울을 날 수 있다며 나시에 짧은 반바지 이웃 건장한 아주머니 옷차림이 바뀐 것만 봐도.


나도 몸을 포옥 덮어 주는 이불이 좋아졌고, 몸을 감싸 주는 옷이 좋아졌다. 시원하고 짜릿한 상쾌함보다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옷감이 좋은 것이다.


옷도 이불도 듣는 노래도 착착 감겨오는 것에 더 맘이 가는 계절, 예쁜 말로 라떼의 계절의 돌아와 버렸다. 완전히.


이럴 때 바깥에서 부는 바람은 선선하다. 이른 아침, 저녁 얇게 옷을 입고 나갔다간 심장 가까운 곳을 나도 모르게 두 팔로 감싸 안게 된다. 몸의 소중한 곳을 본능으로 보호하기 위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철길을 지나다 강인한 꽃을 보았다. 철길 옆에 피어야 더 어울리는 꽃. 코스모스 꽃을 들여다보며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을 듣다 보니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아득히 멀리  떠나듯 잊고 있던 옛일이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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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 동네에는 새로운 교회에서 운영하는 선교원이 생겼다.

시설이 깨끗하고 교회라는 단체에서 운영되니 아이를 잘 보살펴 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믿음처럼 기관은 잘해주었는지  모르겠다.


딸아이는  선생님 놀이를  할  때면  원생인  내가  조금이라도  일어서려는  찰나,  책받침으로  내리치며  

"앉아!!"

를  외쳤으니  말이다.


 딸아이가 낯가림이 심해 적응하는 동안 울며 불며 다니기.도  해서  모두가  힘들었을거다.


1년이 끝나갈 무렵, 학예발표회가 열린다고 했다. 아이들이 꾸미는 것도 있지만. 무대에 오를 아버지 합창단이 필요하단다. 10명의 아부지 중 한 분이 부족하니 참여해 줄 것을 부탁보단 강요에 가까웠다.


노래를 못 부르는 음치다, 부끄러워서 못한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게 하셨다. 입만 벙긋벙긋하면 되는 립싱크도 있지 않냐, 소이 말해 머릿수만 채우면 된다는 선생님 말씀에 알았다고 했다.


낯가림 심한 딸아이가 일 년 내내 선생님을 힘들게 한 걸 생각하면 아부지로서 그런 부탁쯤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냐. 음치 아빠는 그렇게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합창단의 대열에 끼일 수 있었다.


빨간 나비넥타이까지 매고서. 그야말로 립싱크의 진수를 그때 보여주었더랬다. 목소리 1도 내지 않고 입모양만 보여주는 힘든 고통스러운 시간을 딸아이를 위해 담담히 해 내었다.

아주 훌륭하고 노래 잘 부르는 아빠라며 뿌듯해할 딸아이를 마주 보며 말이다.


그때 부른 노래가  해바라기  [사랑으로]였다. 음치도 합창단원이 될 수 있다며 두고두고 놀려 먹었더랬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인가  뭔가를 조금 알아갈 즈음, 음치 아부지의 식은땀 흘렸던 노력을 인정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초등, 중등은 그이도 바삐 지냈나 보다. 해외 여러 곳을 출장 다니느라 곁에 있을 겨를이 없었다. 중요한 시기였을 텐데, 혼자 주로 아이 둘 곁을 지켰다는 걸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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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송파구에 있는 정신여고는 기독교 재단 학교였다. 밀알 수련회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저녁, 부모님을 초청하였다. 학교가 집 앞이기도 해서 퇴근하고 둘 다 무방비 상태로 찾아갔다. 무얼 하며 다 큰 여고생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시려나.


교사와 학생, 부모님이 삼위일체가 돼야 더 학생의 꿈을 키워주지 않나 그런 취지였던 거 같은데. 뭉클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똘래 똘래 발표회 구경하러 가듯 찾아간 학교 입구에서 좀처럼 시간 내기 힘든 아빠들에게 인터뷰 요청이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따님에게 하고 싶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딸이 여고시절 친구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잘 지내길 내지는 공부 열심히 해서 인 서울 하기 바란다 등등’

아비로서 딸에게 힘을 보태는 한마디 말을 근사하게 해 주길 바라며 옆에 쑥스럽게 서 있기도 전에 인터뷰는 끝이 났다.


“없는데요.”


입장하기 전 동영상 촬영  되던 것도  순간  멈춘  듯. 주변이  일시적으로  얼음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딸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는 거다. 동영상을 틀어주는 시간에 보여주면 관중석에 앉아있는 딸아이가 부모님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감동받고 심기일전해 주길 원하는 고도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런 깊은 뜻도 헤아리지 못하고,  띠리리~ 할 말 잃고 두 눈 동그래지는 선생님. 민망해하며 숨고 싶은 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입장을 했는지 인터뷰 장면이 방송으로 나갈 때도 마지막 등장이 되었다.

대강당에 모인 1학년 전체 학생과 선생님들은 배꼽이 떨어져 나갈 듯 웃고 또 웃고 난리가 났다. 다들 어쩌고 저쩌고 하며 소망을 듬뿍 담아 교장선생님 훈화처럼 몸을 비틀며 듣고 있다가 짧고 명료함에 완전 반전.


나는 민망해서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더만, 나중에 아빠의 팬클럽까지 조성이 되었단다.

아빠의 유머러스함에 딸아이 인기가 올라갔다며.


지금도 가끔씩 딸아이는 우리 엄마, 아빠는 시트콤을 찍는다며 마구마구 웃는다. 웃거나 말거나 서로서로 각자 몫하며 잘 살면 되는 거지.


라떼의 계절에  모처럼 멀리까지 다녀왔다. 지금도 얘기 꺼내기 전 온 가족이 웃음 빵 터질 일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맞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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