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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04. 2021

몸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아이들

주머니 속 사랑 꺼내놓을 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사랑받고 관심받기를 원하는 것일까. 어쩌다 한 번은 늘 사랑의 배가 고픈 것.


바깥놀이 하러 신발을 신던 J와 L이 하는 말을 잘못 들었나 했다.

“L  난 내가 많이 아팠으면 좋겠어.”

“나도 그래. 내가 아프면 정말 좋겠는데...”

지금 많이 아파 끙끙 앓고 싶은데, 아프지 않아 속상하다는 것처럼 시무룩해했다.

둘이 주거니 받거니 쿵짝이 맞는 걸로 봐선 이런 말을 처음 나누는 게 아닌 듯 싶다.


“너희들이 지금 한 말은 정말 몸이 아팠으면 좋겠단 말을 한 거야?”

“네 선생님. 왜 아프고 싶냐면요?” 하면서 아프고 싶은 뚜렷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묻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싶을 만큼 답이 준비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요, 엄마랑 아빠가 더 아껴주고 더 보살펴주고 정말 잘 대해줘요. 그리고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요. 이 구두도 그래서 신고 온 거예요.”

아래를 향해 L의 구두를 내려다 봤다.


물려받은 건지, 발보다 훨씬 큰 구두를 예뻐서 미리 사 둔 건지 모르겠다. 발이 담긴 구두의 뒷부분이 한참 남아 헐거워 보인다. 걷기 불편할 텐데, 좋은지 펄쩍 쫓아가려는 걸 편하게 걷던 뛰던 하라고 찍찍이를 바짝 당겨 붙여주었다. L의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추워졌고, 구두가 커서 걷다 넘어질까 봐 바깥 나갈 땐 안 된다고 했을 거다.


어떤 부모든 아이가 몸이 아플 땐 안쓰럽고 안타까워한다. 펄펄 날아다니듯 바삐 움직이던 녀석이 끙끙거리며 앓고 있는 걸 볼 때면 가슴을 후벼 파듯 아픈 것이다. 죽을 쒀 한 숟갈이라도 떠먹을 수 있게 들여다 보고 있질 않나. 그러니 구두를 신던 비닐을 신던 기운차려 뭐라도 하는 걸 보면 안심이 되고 그거라도 하는 것에 고마운 맘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평소엔 안 된다고 잘라 말한 것도 잊고 한없이 관대해질 수밖에 없을 터. 아이는 끙끙거리면서도 들어갈 틈과 숨 쉴 나름의 방법을 찾는 시간이 됐나. 금방 털고 일어나기를 바라며 지극정성인 엄마, 아빠 사이에서 아이는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참 좋았나보다.


L은 친구들과 놀이할 때 조금만 부딪혀도 큰 소리를 질러댔다. 친구한테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일이 잦아지면 놀지 않으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무가내다. 화가나면 소리를 버럭 질러야 속이 풀리는 아이처럼. 그러다 친구가 조금 잘못한 일이 있을 땐 더 크게 울어버린다. 아프면 엄마아빠가 모든 걸 내려놓고 잘 대해준다는 걸 안 것처럼 눈물 뚝뚝 떨구며 울면 선생님이 더 관심 보인다는 걸 느낀 걸까.


요즘이야 울음이 그친 뒤 이야기를 들어주고 풀어 나간다는 걸 알게 됐는지 울 일이 생겨도 울음이 많이 짧아지긴 했다.


그 아껴주는 사랑을  또 받고 싶어서 몸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녀석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릴 때도 그런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픈 이를 보면 측은지심이 드는 것을.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두 말하면 입 아플 거다. 아이들이 몸이 아파서라도 사랑과 아낌 받길 원하는 걸 보며 사랑주머니에 있는 사랑 많이 꺼내 써야지. 퍼내면 퍼낼수록 커다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주머니 속의 사랑을.


아프고  나서  사랑 관심  쏟아붓기보다  평소에  사랑  에너지  가득  채워줘야  할  터.  몸과  맘이  아프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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