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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Oct 26. 2021

"친구들이 날 버렸어!"

일곱 살이 던진 말의 무거움

바깥놀이 시간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이를 정해서 잘도 논다. 술래를 정하는 가위바위보도 손으로 하지 않고 발로 하는 것을 시작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놀잇감이다.


누가 놀다 두고 간 바구니로 떨어진 낙엽을 쓸어 담는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를 하다 잡힌 친구에게 낙엽 세례로 뿌려주는  낭만적인 S의 넘치는 센스.

제일 많이 하는 것이 달리고 또 달리는 잡기 놀이. 술래는 백상아리란 이름을 달고 도망을 간다. 나머지 친구들은 가장 빠른 친구를 잡으러 요리조리 다녀보지만, 쉬이 잡히지 않는다.

뒤쫓는 아이들이 아무리 쫓아도 잡히지 않는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잘도 빠져나간다. 달리기나 뛰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숨 가빠하면서 뛰고. 달리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녀석들은 그네나 시소, 미끄럼을 즐긴다.


아이들의 놀이를 눈으로 쫓다가 2~3명이 모여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갔다. 무슨 일인고 싶어 다가갈 때까지 이야기가 마무리가 안 된  모양이다.

“내가 L을 진정시켜 주기 위해 곁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네가 안 오면 어떡해?”

J는 빨리 갈 수 없었음을 설명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빨리 오지 않았음을 서운해하는 J와 L의 대화였다.


J의 다음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친구들이 날 버렸어 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진정시켜주지 않고 그냥 갈 수 있겠어?”


내가 지금 사춘기 소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가. 분명 내 눈앞에는 일곱 살 꼬마 여자 아이들 아니던가. 버린 건 뭐고, 진정이 또 무어란 말이던가.


알고나 그 말을 쓰나 싶어 버렸다는 말이랑 진정에 대해 J에게 물었다.

“버린 건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다는 말이고, 진정이란 슬퍼하는 친구를 위로해  마음을 가라 앉혀주는 거잖아요.”


아이의 말을 듣다 놀란 내가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진정이란 단어를 저렇게 깔끔 명료한 J의 설명이 놀라웠다. 친구들이 나랑 놀아주지 않아 를 날 버렸다 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는 또다른 삶의 무거움이 느껴져 맘이  씁쓸해졌다.


예쁜 말 고운 말로 말하면 어린애 같고, 대장질 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무시하듯 던지는 말을 해야 짱이나 대장처럼 보이는 것이 일곱 살 아이들에게까지 내려온 듯하다.


아이들이 영향력을 받는 곳은 참으로 다양하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TV, 만화가 전부였다면 요즘은 TV, 유튜브부터 시작해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식당에서 시끄럽게 뛰고 소리 지르는 걸 방지하기 위함인지  첫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아기에게  쥐어준 휴대폰을 터치해서  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었다.


좋은지 나쁜지 분간 못하고 받아들일 테고. 그것을 크게 받아들인 친구들 중 단체 활동에서 영향을 끼치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좋은 건 칭찬해 주고, 나쁜 건 고칠 수 있도록 타이르고 훈계하며 바르게 커나갈 수 있도록 도움 주는 사람이 우리 어른들 모두가 되면  좋을 텐데.


 J가 던진 말의 무게감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참 어른이 많아지면 참 아이는 저절로 많아지고 예쁘고 반듯한 생각으로 잘 커나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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