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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01. 2021

사랑편지

고맙고 많이 사랑해.

핑크 토끼를 닮은 K가 작은 손으로 가까이 와 보라는 듯 손짓을 한다.

긴히 할 말이 있는 듯 한데, 워낙 가늘고 작은 목소리라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를 가만가만 들어야 했다.


“선생님, 편지 써 왔어요.”

“어머, 선생님 주려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표시를 한다. 급식 먹는 중이라서 그럴 수 있고, 대답하기 멋쩍을 때 주로 하는 버릇이기도 했다.

“아이, 좋아라. 급식 다 먹고 나중에 선생님 보여줘.”

그림도 그렸다는데, 느리지만 꼼꼼한 K가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지 짐작이 갔다.


활동지를 할 때면 K는 선하나 잘못 그어진 걸 못 견뎌한다. 지우개로 쓰윽싹 다 지워 버리는 거다. 그러니 그 시간에 해야 할 분량을 다하지 못하고 뒷 시간까지 이어서 해야 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래도 전혀 조바심을 내거나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이나 안달복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느긋함이 부러울 정도인 K.


섬세하고 느긋한 꼬마숙녀가  어떻게 표현해 주었을지 또 편지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지 궁금해졌다.


급식을 끝내고 3층 교실로 올라온 K가 가방에서 반듯하게 펼쳐 넣어온 걸 꺼내서 가지고 온다.

'두구두구...'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노라면 어쩜 그리 나이에 따른 캐치를 잘해 내는지 놀라울 때가 있어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쭈글쭈글한 할머니로 나타내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도 담겨 있었을 터이다.

예상외로 K는 젊고 정말 예쁜 이로 그려주었다. 흡족할 만큼 맘에 들었다.


한글을 알긴 해도 군데군데 모르는 글자가 나올 땐 물어가며 쓰는 K이다. 모르는 글자가 나왔을 땐 엄마에게 여쭈었을까, 다른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는지 물어보진 않았다.


편지 내용은 엄마나 아빠, 선생님께 감사편지나 친구들 생일 때 쓰던 말이랑 비슷해서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겠다. 글자의 공간이 있는 곳엔  갖가지 색을 넣어주었다. 하트가 뿅뿅뿅 날아다니는 것에서 또 한 번 K의 섬세하고 세밀함.

그림과 글을 보는 순간, K의 맘이 온전히 내 맘으로 전해졌다. 순간 뭉클한 뭔가가 올라오더니 이내 눈가가 촉촉해지기까지 한다.


K는 고집도 있고 자기주장이 확실하다. 반면 행동이 조금 느린 편이다. 급식을 먹을 때나 그림을 그릴 때, 활동지를 할 때도 시간 안에 끝마치지 못할 때도 많다. 자기 생각을 말한 걸 쓸 때면 그 시간에 해결하지 못한 것은 다음에 해야 한다. 다음 시간이 되면 이미 저 너머 생각이 달아나고 없을 때라 그때 그 느낌을 표현해 내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기다려 줄 수 있을 땐 쓸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쓸거리가  생가났는데,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


어쩌다  한 번씩이긴 해도 K는 고맙고 좋았나 보다. 이럴 때 보면 어린이가 아니라니까.


편지를 주고 난 뒤 K는  가까이 있을 때면 내게 작고 낮은 소리로 물어본다.

“선생님, 제가 준 편지 잘 갖고 있어요?”

“그렇고말고. 선생님을 정말 예쁘게 잘 그려줬는데, 매일 가지고 다녀야지.”

사랑 정성 한 가득 뿜어대는 이런 편지를 어디 가서 받아보겠는가.

받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 담아 K에게 답장 써 주는 날이 올 테고, 좋아하고 기뻐했던 맘만큼

 K도 그 이상 좋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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