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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29. 2021

근사한 졸업 선물

가게 일이 바쁜 P군의 부모님을 위한

P군은 오늘도 나의 손을 붙잡고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할 얘기 많은데,

시간이 넉넉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바깥놀이 시간, 생전 잘 타지 않던 그네에 앉아 밀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부모님이랑 떨어져 지내고, 가게 일 끝나 돌아오면 밤늦은 시간일 테니

부모님과 마주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일흔 하나이신 할머니랑 선생님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물었고, 

일흔셋인 할아버지랑도 몇 살 차이 나는지 물었다. 

아빠보다 한 살 많은 누나인 50 나이라며 셈법이 정확했다. 

염려했던 많아도 너무 많은 나이가 아니냐 그런 말은 없었다. 


“선생님의 최애 음식은 뭐예요?”

순간 당황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닌 최애 음식이라니. 갑자기 묻기도 했고 최애 음식이란 너무나 자연스러운 물음에 끙끙거리다 낙지볶음이라 했다.

낙지 플러스 지하 1층으로 오면 맛있는 낙지를 먹을 수 있다 한다. 


옆에 있던 S가 낙지볶음 시켜 먹어봤다는 말을 했다. 

“맛이 어땠어?”

“맵지만 맛있었어.”

배달업체가 배민인지 또 다른 곳인지 얘기 나누는데, 이야기 수준이 아줌마 수다를 보는 거 같다.


P군의 궁금증은 계속되었다. 

“유치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 다섯 명만 말해주세요.”

다 좋다고 했더니 알겠으니 그중에서 다섯 명만 말하란다. 

P 군이라 했더니 알고 있다는 듯이 자기 빼고 네 명만. 

생각 나는 대로 네 명을 말해 주었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그 친구들이 좋은 이유는 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을 재촉한다.

J는 키 크고 잘 생기고, L은 키 크고 예쁘다며 대충 둘러대듯 말했다.

"인상착의를 나타낸 생김새가 비슷해 보여요."

J와 L의 뭔가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단다.  이 녀석 좀 보게나.

 

히야, 이 녀석이라 부르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영감님 내지는 울 사부님이라 불러야 할 것만 같은

우리 P군의 정원 이야기를 보고 나니 

앞으로 P군의 더 많은 맘의 이야기 계속 들어주고 받아주어야 할 거 같다.


말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P군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었단 생각에 이르자, 맘이 짠했다. 


사진 한 장 붙여주면 우리 P군만큼 짧은 시간 저렇게 써 내려갈 수 있을지 모르겠고, 

저런 죽음, 귀신과 관련한 이야기를 생각해서 써낸 것도 놀랍다.

단숨에 써 내려간 나만의 정원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짐을 느낀다. 


가게 일 하시느라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그동안 P군과 이야기 나누며 썼던 것을 프린터 해서

드리면 어떨까 생각하자, 내 눈에 눈물이 그렁거린다.

나의 최애 P군의 부모님을 위한 근사한 졸업 선물이 되지 않을까.



P군의 정원 이야기

미래의 한 청년이 이사를 갔서요.

그 청년에게 이사를 간 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해서요. 

때로는 TV 혼자서 켜지고 그리고 혼자서 방문이 닫혔어요. 

벌어지는 일이 이상해서 이사를 갔서요. 

이사를 가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 청년이 곰곰이 생각해 보았서요.

그런데 생각이 났서요. 

얼마 전 청년 집 근처 학교에서 학생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그다음 또 얼마 전 우리 동생이 교통사고가 나 죽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했서요. 

지금 우리 집에 있었던 귀신들의 사람 모습을.

그리고 그 청년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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