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기쁨이고 즐거움일까.
사립초등학교든 자율형 사립고든
“선생님 내일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이에요.”
아침 차에 올라탄 L이 약간 긴장이 되는 듯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얼마 전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이라며 다녀오지 않았던가.
해가 바뀌면서 여덟 살이 된 아이들은 다니게 될 초등학교 이름에 대해 서로 묻곤 했었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애들끼리의 연대감도 느껴지게 했지 않았던가.
혹시 내가 자기들과 같은 학교를 졸업했나 싶어 어느 초등학교인지 묻는 불똥이 튀기도.
초등학교가 아닌 국 민학교라고 하면 에게 그런 학교가 어딨냐며 호호 하하 웃긴다며
마구마구 웃었을 테지만.
그 당시 L은 사립초등학교에 붙었다며 으스대듯 자랑스러운 듯 뽐내듯 말했던 거 같다.
자기가 가보지도 않았는데 사립인지 공립인지 뭘 알겠는가.
어른들의 반응에 의한 잘난 체였을 테지.
"187번 OOO"
이름이 호명됐을 때 주위에 있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가 떠나갈 듯 박수를 치며 엄청 좋아했단다.
엄마는 천장에 머리가 닿을 만큼 높이 뛰어올랐고, 외할아버지께선 기뻐서 눈물을 흘리시기까지. 아이의 말을 듣고 있으니 어떤 상황이었을지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정말 기뻐도 눈물 흘릴 수 있다고 하자
우는 모습은 무조건 슬퍼 보인다고 말하는 L.
외할아버지께서 우니까 슬픈 맘만 들었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봤던 L의 마음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 학교가 그렇게 좋은 학교인지 왜 그렇게 좋아해야 하는지.
아이들 말을 들어보면 사립학교의 좋은 점은 급식이 잘 나온다고 했다.
먹는 것엔 별 관심이 없는 L이라서 아이들이 아는 만큼의 사립학교에 대한 매력은 아직 모르는 거. 조금 먹는 양인데, 먹는 속도도 느리고 사정해서 우유도 겨우 반을 마시는 L.
L이 가게 될 학교는 집에서 꽤 떨어진 사립초등학교.
7세 반 두 반을 합쳐 50여 명이 넘는 아이들 중 혼자 가게 된 초등학교.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립학교를 먼저 지원하고 떨어질 경우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를 가는 분위기이다.
집 안 어른들이 뛸 듯이 기뻐하고 좋아하니 좋은 곳인가 보다 했다가
막상 가려고 하니 덩그러니 혼자가 된 느낌을 어른들과 부모님들은 알기나 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아이의 맘은 전혀 생각 않는 욕심 많은 부모였다.
작은애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갈 당시, 과고나 외고 외에도 자율형 사립학교 제도가 시행되었다.
잠실 종합운동장 맞은편 살 때라 휘문고등학교가 가까웠다. 학교를 미리 방문해 보았을 때 면학분위기나 학교 건물 외관도 맘에 쏘옥 들었다.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등록금이 일반고에 3배 정도 비쌌다. 회사에서 전액 지원되니 문제 되지 않고.
방과 후 과정도 잘 되어있어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아도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한 반에서 휘문고나 중동고 합쳐 5명 정도가 지원했던 거 같다. 아이 반에도 5명이 지원했다. 랜덤에 의한 추첨방식인데, 아이가 부여받은 번호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장에 총 맞은 거 같은 아픔을 느꼈던 거 같다.
강남 아이들은 선행학습이 1~2년은 되어 있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 학교만 들어가면 좋은 대학 가는 건 따놓은 당상처럼.
아이는 일반고 1 지망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잘 다니고 있는데, 나만 미련을 버리고 못하고 있는 꼴이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휘문고와 중동고엔 부적응해서 일반고로 옮기는 아이들의 자리를 수시로 충원하는 제도가 있었다.
홈페이지에 공고를 해서 부모님들이 직접 공개 추첨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상자에서 뽑는 인원수만큼 들어있는 주황색 탁구공을 집어 올리는.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주황색 공이 나오면 끝이었다.
눈앞에서 흰 공이 올라올 때는
저만치 휘익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싫었다.
휘문고와 인연이 없는가 보다 여길 즈음,
중동고에서 휘문고와 충원 모집하는 날짜가 달리 공고가 올라왔다.
1학년 1학기를 적응하며 잘 다니고 있는 아이는 모른 채 계속 지원만 하면서 매달릴 수 없는 일.
혼자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근무 중 행사가 겹쳐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인데,
마침 이른 방학 중이었던 누나의 도움을 청했다.
엄마인 내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헛된 꿈이 하늘을 찌르는 나날이었던 것이다.
대충 본 팬트하우스에 나오는 자식에 대한 명문대의 욕망이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휘문고는 붙는다고 해도 가까웠지만 중동고는 차편이 불편하고 멀었다.
붙는다면 이사하려고까지 한 것인지...
중동고는 휘문고와 달리 부모나 가족이 직접 뽑지 않고
학교 측 교장 선생님께서 뽑는 형태라고 딸이 전해 주었던 거 같다.
딸에게 뽑혔다며 전화가 걸려왔을 때
기뻐하고 좋아해야 할지...
중동고 지원한 사실을 본인인 아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으니.
어떻게 말을 꺼내 설득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던 듯싶다.
딸이 받은 번호가 호명되는 순간, 떨어진 엄마들이 포기할 생각 없냐며 빙 둘러싸서
동시에 물어볼 때 무섭기까지 했을 만큼 긴장되고 긴박한 순간을 뚫고 당첨된 건데.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사실을 알렸을 때 예상한 대로 자기는 그 학교에 갈 생각을
1도 해 보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아빠도 설득에 참여해 보았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평양감사도 자기 하기 싫으면 못한다고. 협박에 설득에 매달림에 그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어림없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알아갈 나이쯤에 물어본 듯하다. 그때 중동고에 가지 않았던 것에 아쉬움은 없냐고?
전혀 없단다.
고교 시절 좋은 친구들 만나 즐겁게 잘 보냈고, 열심히 공부했고.
지금까지 그 좋은 친구들과 만남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거다.
L은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 8살. 가기 싫든 좋든 자기 의사 충분히 반영이 되지 못한 채
결정되어 움직인다는 사실. 과연 누굴 위한 것인지 옆에서 보기엔 조금 맘이 쓰인다.
고교생이 되는 나이였던 부모인 나도 욕심과 욕망만 가득 찬 채 몰라서 저지른 일이 많았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