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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an 31. 2022

'우린 정말 행운아들!'

파프리카 같은 꾸러기들

유아반에는 어느 반이든 파프리카 같은 선명하고 탱탱한 꾸러기들이 두세 명씩 있다.

말썽꾸러기, 장난꾸러기 반 분위기를 한순간에 뒤바꿔 놓을 파워 있는 울트라 꾸러기까지.


어린 반일 수록 말귀는 닫은 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꾸러기 둘셋만 있어도

순식간에 통제 불가능이 된다. 자연스레 선생님의 목소리가 곱고 다정함에서

낮고 엄한 소리로 돌변하지 않을 수 없고, 때론 비타민이 약효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루치의 활동과제와 주어진 분량을 소화해야 하는 단체 통솔자인 선생님 입장에선

네가 옳다, 잘한다, 이뻐라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소수의 존재감 모두 인정해 주고 싶지만, 나머지 친구들이 수업 방해를 받으니

맘과 다르게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최대한 무표정과 목소리에 힘 싣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런 친구들이 혼나는 것은 그때뿐인 듯. 잠시 후나 다음에 똑같은 일이 계속되는 것이다.

성향이나 기질적으로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고집도 있으며, 목소리가 우렁차고 몸놀림이 재빠르다.


그 반 친구들이 줄을 설 때면 꼬리 부분에서 바짝 따라붙지도 않는다.

친구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놀고 장난치느라 앞 친구들이 뭘 하고 있는지 관심 없는 딴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5세 반 K도 장난꾸러기 중 한 명이다. 먼저 딴짓을 시작하기도 하고 누군가 엉뚱한 행동 하면 한 치의 오차 없이 끼여 드는 몸이 먼저 반응하는 친구인 것이다.

‘한 번씩 그 반을 돌볼 때면 꾸러기들 중 하나라 선생님 무지 힘드시겠다.’ 생각했던 거 같다.


요 며칠 아침 차를 태우며 K만의 매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뭉치면 개구쟁이 위력 발휘이지만, 일대일 대응에선 애굣덩어리 그 자체였고, 발음도 미완성 단계라 더 귀여웠다. 이래도 응 저래도 응 하지 않는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해 잘못 알아들었다며 고쳐 말해주는 모습이 더 재미있다.


엄마 꽃게가 옆으로 걸으며 아기 꽃게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 것처럼

또뜨(소스) 박치기야(반칙이야) 같은 말들을 따라 할 때면 그게 아니라며 고쳐 말해주는 게 더 앙증맞았다.


K의 숨은 매력을 나 이외에 5세 종일반 선생님이신 씩씩한 반 선생님도 환히 웃고 계셨다.

아이들을 대하는 손길이 정성스러운 선생님께서 꾸러기들이 힘드실 텐데,

사랑의 눈길까지 주고 계셔서 더 정감이 갔다.


그 반 꾸러기들이 뭉쳐 엉뚱한 짓 해도 상처받을 말을 쉬이 내뱉지 않는

유아교사로서의 충분한 소양을 갖춘 사랑이 가득한 유쾌한 선생님이라고 할까.


씩씩한 선생님께서 꾸러기 K의 매력에  빠져 계시다는 걸 안 후론

둘이 스치기만 해도 서로 보지 못한 에피소드를 교차하듯 나누며 웃음보를  터트린다.



나야 아침 차를 태울 때 잠깐 보는 사이다.

씩씩한 선생님께선 온종일 돌봄의 손길이 미쳐야 하는 비교 안 되게

긴 시간 함께 하셔야 된다.

둘셋 엉뚱하고 장난기 많은 애들 뿐 아니라 개성 만점인

모든 아이들 속에 꽉 끼여 혼쭐 빼며 지내셔야 하는.


애들 말 배우기 시작할 즈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할미가 좋아, 할비가 좋아?’

물어보던 것처럼 어느 날, K에게 물었다.

“K야 씩씩한 선생님이 좋아, 형아반 선생님이 좋아?”

검지 손가락으로 찌르듯 가리키며

“이게 좋아.”

물건이나 짐짝 말하듯 이게 좋다고 하는데 가슴이 벌렁거리고, 입꼬리가 쭈욱 오르는 게 느껴졌다. 손짓받은 내가 기쁨을 느끼고 있는 사이 정작 K의 어린 얼굴엔 걱정이 살짝 스치는 듯했다.


내 가까이 다가와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떤댕님, 이거 칙칙한 반 떤댕님한테 비밀이에요.”

미완성의 발음인 꼬맹이가 비밀이라는 말을 알고나 쓸까.

“K야 비밀이 뭐야?”

“비밀은 말 안 하는 것이에요.”


아이구야, 다섯 살 반 K가 발음도 미완성이고 또래들보다

키가 작아 꼬맹이라 불러도 될 만큼

작은데, 다른 선생님 알게 되면 속상해할 걸 염려해 비밀이라니.

난 자랑이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거리는 데...


씩씩한 선생님께서 아침 우유 간식을 먹이고 계실 때 비밀유지를 하지 못하고

아침 차 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난기 발동한 씩씩한 반 선생님께선

“으음... K야 씩씩한 선생님이 좋아, 저기 계시는 선생님이 좋아?”

양손 들어 손가락으로 두 선생님을 찌르듯 가리켰단다.

그러면서 두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둘 다 좋다는 말까지 덧붙였단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선생님을 서운하게 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배려를 알고 있는 꼬맹이 K군.

K군이 이틀 동안 가족여행 간다며 등원 차를 타지 않으니 맘 한자리의 허전함이 느껴졌다.

씩씩한 반 선생님이 일순간 칙칙한 반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는데도 같은 맘이라니.

‘K군 우린 정말 행운아들 맞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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