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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an 02. 2021

나도 미나리처럼

너희들처럼 밀어 올리는 힘 있기를.

설마 했다. 몸통을 다 잘라먹고 달랑 남은 뿌리에서 새 잎을 돋울까 반신반의하며 물에 담가 둔 거였다. 이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잘라낸 뒤  살아있는 듯 하얀 뿌리 달린 밑동을 버리지 못했다.    

 

가을 들녘 벼 베고 남은 벼이삭 밑동 같아 쓸쓸해진 빈 논이 떠올랐다. 언젠가 빈 논에 들어갔을 때 추수한 뒤 떨어진 벼들이 싹 틔워 올리는 걸 보고 신통하고 놀라웠던 거 같은데... 미나리도 어딘가 꼭꼭 숨어있는 이파리가 정말 나올까 있다면 숨지 말고 나와서 초록 이파리를 보여다오! 하는 마음이었다.   

 

출근하며 바삐 걷는 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파트 화단 그 장미꽃이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얼음 땡 놀이하던 아이가 외치는 ‘얼음’ 소릴 듣기라도 한 듯 며칠 째 꽁꽁 얼음하고 있던데...

너희는 밖이 아니라 창 안에 있다고 창 밖의 겨울 햇살 끌어 모아 피워 올리는 저 꿋꿋한 초록의 힘이라니.

즐겁도다! 힘차도다! 너희들의 강한 생명력이 그저 경이롭도다!     

추운 겨울 속의 초록이 주는 싱싱함과 싱그러움은 또 다른 평안, 행복감이 있었다. 온 대지랑 만물이 말라비틀어져 움츠린 이 계절에 어디다 숨긴 도르르 말린 잎을 펼쳐 보이며 까꿍~!! 해 보이는 너희의 생기발랄함이 흐뭇하다.

“어쿠 마이 컸네. 반찬 해 먹어야겠다.” ‘유기농 수경재배 생으로 먹을까. 무쳐 먹을까.’

혹시 듣고 본 건 아니니? 무성하게 자란 너희를 본 가족이 오가며 한 말과 내 맘을.

툭툭 내뱉듯 던진 말과 잠시 엇박자 난 내 맘을 읽고 화들짝 놀랐지? 

눈과 맘을 말갛게 씻어주는 너희라며 생각할 땐 언제고 반찬으로 해 먹을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으니. 하루에도 수십 번 변덕 부리는 맘이니 너희가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겠다.

    

밀어 올리는 힘이 남달라서 미나리라고 이름 지어진 건가. 그렇다면 나도 너희를 닮고 싶다. 댕강댕강 잘라내도 그 든든하고 튼튼한 뿌리의 힘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새잎을 밀어 올리는 너희들처럼 한 편 쓰고 나면 또다시 솟아오르는 힘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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