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휘 Jan 02. 2021

   문득,

저기요, 매력적이시네요.

전날 피곤이 덜 풀린 눈을 비비며 집 앞에 있는 마을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고개를 드는 순간, 화들짝 잠이고 뭐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바로 눈 앞에 내 눈앞에 훤칠한 키에 단정하고 깔끔한 슈트 차림의 한 남자가 서있는 거다. 매일 사오십대 늙다리 아저씨만 가득한 버스 정류장에 내 또래의 20대라니.    


내 심장은 쿵쾅쿵쾅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올까 왼쪽 가슴을 지긋이  눌렀다. 고개 돌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부끄러우니  엄한 다른 쪽만 바라보고. 실오라기보다 가는 신경 줄 하나마저 또래가 있는 쪽을 향해 있는 이것이 무엇이던고.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두 정거장을 거쳐 지하철역에 내리는 걸 보고 따라 내렸다. 졸졸졸 따라 걸었다. 다행히 반대방향이 아닌 같은 방향의 지하철이다. 많은 사람들에 밀리고 계속 따라가는 것이 미행하는 이상한 사람 같아 놓쳐버렸다. 같은 칸에 타지 못했으니 어디서 내렸는지 모른 체 헤어졌다.

   

생각만으로 설렌다. 기분 좋은 생각으로 한달음에 사무실 앞까지 도착해 버렸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그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다음 날 아침, 정확히 7시 20분 맞춰 버스 정류장엘 나갔다. 늙수그레한 아저씨들만 가득하다. 그 속에 빛났던 한 사람이 없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 시간에 맞춰 나갔지만.


볼 수 없었다. 이 동네 사람 아니고 어쩌다 다니러 왔거나 출근시간이 나와 다른 시간인가 보다. 차츰 잠깐의 설렘을 가져다준 내 또래가 잊힐 즈음, 내 눈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 후 출근 시간 7시 20분이면 버스정류장에 자주 나타났다. 아침해도 잠에서 덜 깬 그 시간에 늙다리 아저씨들 사이에서 내 또래를 잠깐 보는 즐거움이 어마 무시했다. 힘들던 출근 준비 시간이 설레고 조마조마 콩닥콩닥했다.     


오늘은 나와 있을까. 두근대는 맘을 안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먼발치에 살짝 보일 때면 심장이 쿵쾅대고 보이지 않을 때면 버스 떠나기 전까지 목이 길어진다. 혹시 엘리베이터라도 놓쳐 뛰어오지 않을까. 만약 뛰어오는 게 보인다면 큰 소리로 외쳐야 하나.

‘기사님 저기 사람 오고 있어요!’ 별 신경을 다 쓴다 싶어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어  좀 전에 머릿속 상상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앞문이 닫히려던 순간, 뛰어오르는 거다.

"휴우" 숨을 고르는 그 순간 내 숨도 골랐다. 요동을 쳐 대는 내 심장 어떡하지? 붙들어 맬 수도 없고.

    

분명 고개는 또래와 반대쪽을 향하는데, 온 신경은 또래의 정면을 향한다.  숨도 크게 못 쉬면서 또래한테 집중하고 있다. 내 호주머니엔 세 달째 손 때 묻은 쪽지가 그대로 잘 들어있다. 옷 바꿔 입을 때 혹시 빠트렸나 심장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역시 오늘도 전하지 못했다.


전해주지 못한 쪽지 꼬옥 쥐고 오늘 오늘만은 한 게 여섯 달째. 어느 날부터 옷차림이 달라졌다. 누군가 챙겨주는 것만 같은. 손에는 반지까지 반짝거렸다.     


‘저기요, 매력적이시네요.’

끝내 전하지 못한 쪽지는 허공에 날아가고. 나의 스무네 살 이루지 못한 꿈에서 화들짝 깨어나고.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미나리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