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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an 03. 2021

"엄마  또  꽃사진이야?"

들춤의 시간이 만들어준 의식의 함양

“엄마 또 꽃 사진이야?”

앞을  지나다 겨울 장미의 꼿꼿함에 끌려 휴대폰 카메라 렌즈를 가까이 댔다. 못 말리는 엄마라며 비켜서서 기다리는  듯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짜증 내듯 재촉한다.

 “늦었어, 엄마 빨리 가자.”

충분히 원하는 사진이 안 찍힌 거 같아 머뭇거리는 뒤통수에 대고, 곧 한 방의 센 말이 날아온다.

“오십 넘은 아줌마들 프사는 다들 꽃 사진이라더니, 울 엄마도 별 수 없다.”


따닝 말을 듣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휴대폰 속의 갤러리엔 꽃 사진이 가득했다. 어디 꽃 사진뿐이던가. 자연 속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날 멈추게 하면서 폰을 꺼내 들게 했다.    


2020년 내가 뭘 하며 살아왔나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폰 속의 갤러리다. 지나다가 맘을 붙잡는 무언가가 띄면 순간을 담았기에. 모든 순간이 결정적이었을 텐데. 보는 사람 느끼는 사람 다를 터이니 내 눈에 의미 있고 아름답고 결정적인 순간을 담았을 테다.      


지난번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진이 한꺼번에 후욱 날아갔다. 휴대폰을 샀던 대리점에 가 물어보았다. 드물게 이런 경우가 생긴다며 재생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소중하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날아간 듯 많이 안타까웠다.


사람들 약속으로 정해진 2020년이 수명을 다하고, 2021년을 맞이한 지 3일째다. 모처럼 주어진 3일간의 연휴를 즐기며 2020년에 담긴 사진을 쭈욱 들여다보았다. 어렵고 힘든 삶을 지치지 않으려 꿋꿋이 살았지만, 안간힘을 쓴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적도 있다. 자유롭지 못한 제약 속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자 애썼을 테니.    


찍은 사진을 크게 나눠보니 먹고살기 위한 사진, 그냥 내 맘을 붙든 사진, 꼭 알아야 할 사진, 알아두면 좋을 사진, 평생 지닐 사진으로 나눠졌다.    


먹고살기 위한 사진 중 기억에 남는 사진이 몇 있었다. 수도, 전기, 가스 검침을 하며 스스로 검침원이 되어 본 일. 아파트에 살면 집 안에 있는 가스 검침만 알려드리면 된다. 나머지는 자동해결이었다. 관리비 명세서가 나오면 그때서야 요만큼 이만큼 썼구나. 그게 성가시고 불편한 일인지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어릴 때 주택 살았고 울 시엄니 지금 주택 살고 계셔도 내가 검침하질 않았으니. 부동산 일을 하다 보니 다가구, 다세대 등 의무는 아니라도 서로의 편리함을 돕기 위해 검침을 해주는 일은 기본이고, 각 사업소에 전화 걸어 요금정산까지 해 놓은 일이 허다했다.  


지금은 도시가스 계량기가 어디쯤 있는지, 수도와 전기 검침 기는 어딨는지 척척 알뿐만 아니라, 전기계량기는 숫자 7이 뜰 때 검침 숫자를 적어야 한다는 것까지.


대개 가스와 전기 검침 기는 집 밖에 달려 있는 데, 가스 검침기가 키높이보다 높이 있을 땐 폴짝폴짝 뛰며 숫자를 읽으려  애쓰는 꼴이라니.  지나는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벌건 대낮에 저 여자 왜 저러고 있나  싶었을 듯.  전기 검침 기는 숫자가 빛에 반사되어 안의 숫자가 안 보일 때면 깨끔발로 코를 박고 붙어 서서 숫자 7이 바뀔 때까지 한참을 오들오들 떨며 서서  숫자를 읽어내려  했다. 그동안 참 편협된 삶을 살았다.    

그냥 내 맘을 붙든 사진은 생동감이 느껴지는 만물이다. 아마도 내 안의 에너지가 부족해 그것을 보충키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나 자신이 꽃이라고 믿던 시절은 내 모습이 대신했겠다. 따닝의 말처럼 오십이 넘은 아줌마 프사에 꽃 사진이 많은 이유가 부족한 에너지를 예쁘고 아름다운 꽃에서 끌어다 쓰는. 좀 더 싱싱한 삶을 살고 싶은 그런 게 아닐는지.   

 

꼭 알아야 할 사진이라면 부동산과 관련된 법이 날이면 날마다 바뀌고 있으니 불이 날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들어온다. 봐도 봐도 모를.    


알아두면 좋을 사진은 살면서 지혜와 통찰, 성찰을 떠올릴 수 있는 더욱 윤기 나고 반짝이며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좋은 글귀나 구절들 의식의 표절들.    


평생 지닐 사진이라면 현재는 같이 붙어사는. 곧 따닝과 아드닝은 각자 독립된 삶을 살 테고, 부탁 부탁해서 어렵게 찍은 가족사진들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내가 찍는 사진과 쓴 글은 나는 누구인지 알게 해 주고 알게 될 테고, 내 의식 속에 이런 것도 있었나 싶은 순간을 마주하게 할 2021년의 사진과 글은 계속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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