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을 쓸 때 어쩔 수 없이 나와 우리의 과거를 소환하게 된다.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면 괜찮겠는데 꼭 슬프고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사람들은 기쁨은 사진에 담고 슬픔은 마음에 담는다. 기쁜 일들은 가끔 사진첩을 꺼내보면 될 일이다. 한껏 뽐내고 찍은 사진첩을 보노라면 즐거웠던 한때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런데 마음을 꺼내기 시작하면 슬픔이 밀려온다. 그러나 마음에 담긴 나쁜 일은 애써 꺼내지 않으면 없었던 것처럼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난데없는 슬픔들이 싫어서 나는 에세이를 쓰기 싫었던 것 같다. 현재의 나는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자꾸 과거의 흔적을 파헤쳐서 마음을 흔들어 놓으면 무엇 하나,란 생각이 꽤 지배적이었다. 내 과거를 소환해 내는 일도 싫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조심스러웠다. 나의 주관과 생각이 주를 이루는 것이기에 내 관념대로 줄을 긋고 레이아웃을 짜고 색을 칠하고…. 내겐 너무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혹시 내가 그들을 내 멋대로 재단하고 그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아무리 나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자칫 그들의 사생활이 침범당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가족도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쓰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내도 되는 것인지 나는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굳이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단단한 각오 같은 것이 함께 한다. 꼭 해야 할 말인가를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조심조심해가며 현재에서 벗어나지 않는 나의 이야기만을 쓰려 애를 썼다. 굳이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우울해지는 이상야릇한 감정에 휘말리면서까지 과거 속 나를 꺼내어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도 싶었다. 그런데 ‘현재’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자꾸 ‘나’와 ‘우리’의 과거의 흔적들이 스물스물 기어올라 왔다. 지금에서 후퇴한 과거의 순간들이 떠오르게 되고 나의 과거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자꾸 꾸역꾸역 내 마음속으로 기어코 따라 들어왔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혼자일 수 있는 것이 아니거니와 현재는 과거가 차곡차곡 차올라 만들어진 세계이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피하고 저렇게 피해가도 굴비처럼 과거의 사람들이 엮여 들어오는 희한한 일들을 나는 지금 목격 중에 있다. 꾸역꾸역 밀고 들어 온 기억들이 나 혼자 떨쳐내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낫겠는데 내가 사람들에게 잘 하지 못했던 것들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와서는 그 회한의 슬픔들을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어제는 어떤 글을 쓰다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오빠의 남매가 생각났다. 노총 퇴사 전에 조카보고 우리 한번 만나 밥이라도 먹자고 말한 기억이 있다. 그 때에도 나 살기 바빠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한 연락이었다. 그렇게 톡만 하고 또 다시 잊고 살았던 우리 조카. 그 뒤로도 몇 년을 나 살기 바빠서 연락하지 못했다. 오빠를 생각하다 조카들을 생각했고 엄마와 아버지가 생각나고.
과거의 내사정을 떠올리지 않으면 슬플 일 없는 나는 한없이 슬퍼졌다. 요몇일 동안 자꾸 눈물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꺼낼수록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글을 쓰면 쓸수록 내 마음속엔 더더더 슬픔이 가득해졌다. 몇일째 마음을 꺼내 본 비용으로 나는 눈물을 내리고 하늘은 비를 내린다.
나는 다시 조카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조카, 잘지내고 있니? 조만간 만나서 밥한번 먹자.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