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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Mar 11. 2022

나 홀로 노래방

내 안에 ‘지중해’ 있다


어느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났다.


“지난번에 나 혼자 노래방에 갔어요.”

“어머 왜 혼자 갔어요? 그럴 땐 나를 부르지.”

“혼술 하다가 미친 짓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젊을 때에는 재미있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하면 미친 짓이래요.”


‘젊은 시절 재미있는 일이 지금의 내가 하면 미친 짓이 된다.’는 명제를 지금의 나는 늘 뒤엎고 싶었다. 그 삐딱한 심리가 내 안에는 항상 내재되어 있다. 왜 나는 그때 그 시절 좀 더 방탕하게 살지 못했고 자유롭지 못했고 용기가 없었을까. 그거야 나의 사정과 배경이 그럴 여력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도 그 시절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될 부분이지만 지금 여기에선 각설하고.


내 젊은 시절에 남들만큼 못해 본 것 중 하나가 클럽에서 놀기, 노래방에서 놀기이다. 이 말고도 못해 본 것이 수 없이 많지만 남들은 흔히 즐겨 본 것들을 나는 흔히 즐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용기가 없었고 위축 되었고 부끄러움이 앞섰다. 노래방에서도 그랬다. 뭐 노래방에 가는 사람들이 노래를 다 잘 부르는 것은 아닐 텐데 나는 마이크를 잡을 용기조차 없어 주춤대기 쉬웠다. 하지만 이만큼 사는 동안 술 먹고 토해보기는 많이 했다. 그래서 이제는 안 한다. 그나마 다행인가?


신혼 무렵, 우리 친정 가족들이 외식을 하고 노래방에 가서 놀게 되었다. 모두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이 선택한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노래방이라는 놀거리를 아주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나와 다른 환경에 살았기 때문에 다를 수 있다지만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던 언니들이 노래방 문화를 너무 잘 소화하고 있었다.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 차례가 되었다. 부르고 싶지 않았지만 언니들의 계속되는 성화에 그즈음 매체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차태현의 ‘이차선  다리’를 부르기로 했다. 듣기만 했지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던 노래였다. 리듬이 쉬워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노래방 분위기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선택한 노래였다. 내 노래 부르기는 참패였다. 박자와 음을 하나도 맞출 수 없었다. 역시 연습 없이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창피해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 후로도 가끔 사람들과 노래방에 갈 일이 생겼지만 나는 항상 뒤로 쑥 빠지고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거나 내가 평소 듣고 싶었던 노래를 다른 이들에게 청해 들었다.


어릴 때의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했다. 내 가족들 중 노래 솜씨가 빠질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성인 된 나는 노래를 가장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마음이 상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가수가 아닌 이상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나. 하지만 그때의 나는 가장 위축된 삶을 사는 것 같이 보였고 가장 우울한 사람 같았다. 그것이 속상했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나 혼자 노래방에 가보면 좋겠다, 라는 워너비가 생겼던 것 같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곡목을 쭉 메모해서 신나게 불러 보고 오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용기 있게! 신나게! 그러나 나 홀로 노래방을 간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지금의 나로서는 여자 혼자 술집에 앉아 소주를 먹는 것만큼 난해하고 어색하고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 전염병 창궐의 시대에 나는 혼술을 하다가 ‘나 홀로 노래방’에 갔다. 젊은 친구들은 흔히 있는 일이고 미친 짓이 아니겠지만 내게는 있을 수 없는 미친 짓인 것이다. 그 어느 날에 나는 혼술을 했고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 몽니의 몽환적이고 사연이 있는 노래가 고독한 내 감정에 오버랩되었다. 언제까지 내 맘속에 살아갈래~


‘오늘 가야겠다. 노래방.’


현관문을 열고 5분쯤 걷자 노래방이 나왔다.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인데 내게는 아주 먼 세계와 같았던 곳. ‘하이 노래연습장’ 노래방 이름이 노래연습장으로 불린다는 것이 새삼 새로웠다. 그래, 나는 오늘 노래 연습을 하러 가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인지 노래방은 조용했다. 미성년자도 아닌데 이미 겁 없는 중년인 내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다. 노래방에 사람들이 적은 것이 더 불편한 것인지 더 편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주뼛주뼛 낯설었다.


“혼자 오셨어요?”

“아… 네……”

“3만 원입니다.’


노래방 여자가 빈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여하튼,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이렇게 내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는 이날 내 소원대로 노래를 원 없이! 신나게! 부르지 못했다. 나는 노래방 기계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서 거의 모든 시간을 노래방 기계와 씨름해야 했다. 노래방 사장님에게 노래방 기기 조작방법을 물어야 했고 노안으로 어두운 불빛 속에서의 노래방 책 글자가 뿌연 연기처럼 보였다. 그렇게 20, 30분은 기계에 노래 곡목을 입력하는 것으로 허비한 것 같다.


내게 익숙한 노래 몇 곡을 겨우 찾았고 불러 보았다. 내가 완곡할 수 있는 노래는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껏 내 맘대로 소리 지를 수 있는 것이 허락되었다. 목청이 터져라. 어디서 이렇게 소리를 질러 볼 수 있을까. 요즘은 집에서도 큰 소리를 내서는 안되고 산에 올라서도 메아리를 부를 수 없다. 집에서는 사람들이 놀라고 산에서는 산짐승이 놀란다나…… 그러나 노래방은 신세계였다. 고함이 합법적으로 허용이 된 곳이었다. 시원했다. 이건 미친 짓이 아니라 일상의 혜안일 지 몰랐다. 막상 직접 해보니 ‘나 홀로 노래방’은 미친 짓도 아무 짓도 아니었다.


다음날 지갑 속에서 시침을 때고 앉아 있는 영수증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곧 현타가 왔다. 내가 한 미친 짓은 나 홀로 노래방을 간 것이 아니라 노래 몇 곡을 부르기 위해 거금 3만 원을 쓴 것이란 것을…… 친구는 자신은 3만 원이 있다면 차라리 2차로 술을 마시러 가겠다고 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겠다………… 그렇다면 다음엔 나 홀로 술집에서 소주 마셔보기 도전? 이렇게 하나씩 미친 짓을 지워가면 세상에 미친 짓이 모두 사라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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