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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Mar 07. 2024

봄이 오면

삶은 우리를 속일지 몰라도 계절은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겨울볕이 높아지면 라디오를 타고 ‘벚꽃 엔딩’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2012년에 발표된 곡으로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먼저 우리에게 봄을 안겨주는 이 노래, 경연대회에서 비로소 이름을 알린 신인 가수를 한 순간에 건물주로 만들어 준 이 노래, 이 노래가 우리의 일상을 감싸게 되면 봄의 정령이 우리의 코앞까지 왔다는 뜻이다.


이 신호탄을 선두로 온 대지가 기지개를 펴고 깨어난다. 부드러운 햇볕이 대지 위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봄바람은 수줍은 꽃 몽우리를 간지럽혀 한입한입 하늘 위로 꽃잎을 피워 올린다. 이렇게 우리의 세계는 봄의 축제가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의 봄은 애도의 계절이 된 지 오래다. 3.1, 4.3, 5.8 항쟁의 역사와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부채감들이 이 아름다운 봄을 슬픔으로 물들인다. 노란 꽃잎들이 고개를 떨구고 바다로 흩어져 사라진 후 이제 나는 싱그러운 봄을 반기기도 전에 슬픔을 먼저 발견한다. 올해도 개나리 꽃이 피기도 전에 여기저기 슬픔들이 먼저 노랗게 피어올랐다. 그날 이후 우리의 축제는 더 이상 축제다움을 잃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늘 봄을 기다렸고 봄은 우리를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먼지로 뒤덮인 히뿌연 하늘일지라도, 시퍼런 파도가 성을 낼지라도 여전히 봄 햇살은 겨우내 얼었던 우리의 대지를 녹이고 바다를 녹인다. 꽃을 피우고 파도를 잠재우기 충분하다. 봄은 햇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봄의 햇살은 사랑을 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봄의 정령은 세상 모든 것들에 자애롭다.


늘 우리를 속이고 슬프게 하는 것은 나의 이웃이었고 나의 애인이었고 나의 국가였다. 나의 무엇이라고 가장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위선의 세계에서 우리를 구해준 것은 항상 계절이었고 자연이었을지 모르겠다. 세상이 전쟁과 기근으로 얼룩이 져도 계절은 아무 일 없듯 어김없이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에 다시 찾아왔다. 그 계절이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삶은 우리를 속일지라도 계절은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그중 봄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절망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우리나라가 주권을 잃었던 그 척박했던 시대에도 우리에겐 봄이 있었다.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어나는 따뜻한 봄. 차가운 겨울을 견디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고 행복도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 그렇게 봄은 우리에게 희망이고 소망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봄의 정령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처럼 봄의 정령은 우리에게 다시 투쟁할 힘을 솟게 한다. 죽었던 나를 다시 살게 할 의식을 깨워 준다. 모든 걸 묻어버렸던 대지에서 새싹이 피어나 듯, 추위에 숨죽였던 나무가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 우리 마음에도 한 가닥 희망을 틔운다.


오늘 나는 유독 겨울의 끝 자락을 밀고 들어오는 저 봄의 노래가 반가웠다. 슬픔들에겐 미안했지만 다시 봄을 희망의 단어로 삼키고 싶었다. 1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던 노란 리본들이 다시 힘을 내어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봄이 다시 축제의 계절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https://youtu.be/9PtuU5lDsPk?si=e8ex56lSNxBX6OQ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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