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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20. 2024

돌봄은 남성의 근육이 필요해

나는 화요일마다 Y를 데리러 특수학교에 간다. 하교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면 스쿨버스 몇 대가 학교 현관 바로 앞쪽으로 줄을 서서 대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편리하게 버스를 탑승할 수 있도록 한 배려이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담당 선생님들의 손을 잡고 하나둘씩 교실을 빠져 온다. 친구끼리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와서 자기가 탈 버스를 찾아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그런 반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들은 보호자의 통제와 보호가 필요해서 선생님들의 손을 꼭 잡고 나온다. 

수업을 마치고 저마다의 형편에 따라 하교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중 눈에 띄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몸집으로 보아서는 고등학생인 것 같았다. 사회 복무요원이 데리고 나 왔다. 사회 복무요원보다 키도 크고 덩치가 큰 그 아이는 통제가 잘 되지 않았다. 딱 보아도 혼자 놓아두면 무슨 사고라도 칠까 걱정이 되는 친구였다. 충동이 이는 데로 가려고 했다. 보호자의 많은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그 친구는 자기가 타야 할 버스로 가지 않고 자꾸 다른 곳으로 가려했다. 몸집이 크니 가볍게 통제가 되지 않았다. 사회 복무요원이 난감해하면서 그 친구를 힘으로 눌러 통제해서 스쿨버스에 태웠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마치 사회 복무요원이 그  친구에게 폭력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장면이었다. 

또 한 번은 장애인 활동지원사 실습을 위해 홀트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참 힘든 장면을 보았다. 언뜻 보아도 180cm가 넘어 보이는 한 발달장애 학생이 사회 복무원 2명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거칠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행동장애가 심해 보였다. 잠시도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했을 것이다. 못하게 하면 할수록 더 튕겨져 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사회 복무요원 2명이 이 학생을 따라다녔을 것이다. 나는 이 당황스러운 광경을 보고 이 친구가 집에 있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안타까워하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코로나 19가 장기화되고 있을 때 기사 한편을 읽었다. ⸢발달장애 아들을 둔 나는 예비 살인자, 50대 가장 의 절규⸥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20대의 발달장애 아들을 둔 50대 가장은 “제가 제 손으로 제 아들을 죽이는 날이 오지 않도록, 남은 가족들이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게, 제발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을 국가에서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간곡한 글을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그는 “치매보다 몇 배 더 힘든 것이 가족 중에 발달장애인이 있는 것”이라며 호소했다. 이 청년을 케어할 사람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돌봄 노동자는 여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청년을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니까. 

이런 일도 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한분은 5년 동안 자신이 돌보던 공격성이 있는 발달장애 남학생이 성인이 되자 감당을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한 번은 그 친구가 자신을 위협하는 정도까지 되어서 그 친구의 활동지원을 그만두겠다고 했으나 그 친구의 어머님의 사정으로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단, 어머님과 늘 함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자차로 치료실 이동을 돕는다고 했다. 

실제로 발달장애 아이들의 부모들은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를 가장 걱정한다. 그리고 내 아이가 유순(?)하기를 가장 소망한다. 문제행동이 심한 장애인은 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나는 장애아동을 돌보면서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 보니 국민청원을 올린 50대 가장의 호소가 얼마나 간절하고 위급한 상황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돌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구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물리적 힘이 센 남성을 돌봄의 세계로 이끌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육아를 하는 아빠가 증가하는 세상에 못할 것이 무엇일까. 실례로 우리 친정어머니, 아버지의 돌봄에 있어서도 언니의 섬세함보다 형부의 물리적 힘이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당장이라도 시급한 남성을 돌봄의 세계로 이끄는 일은 우리 사회가 돌봄이나 육아가 여성의 일이라는 가부장의 압박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함께 돌봄이 우리 사회의 당연하고 가장 중요한 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논의될 가장 우선의 정치적 어젠다가 돌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의 삶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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