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고,
하루에 겨우 두 세대 다니는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달려서 한참 들어가야 하는
깊은 시골 마을이었다.
덕분에 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즐거운 기억들이 많다.
정월 대보름에는 동네 형들과 뒷산 나무를 베고,
잔가지들을 모아서 전봇대보다 더 높은
달집을 만든 일, 겨울에는 꽁꽁 언 저수지에서
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썰매를 타고
넓은 저수지를 휘젓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좋았던 추억만 있는 건 아니어서,
매년 이맘때쯤 되면 떠오르는
트라우마 같은 나쁜 기억이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니까
일곱 살 무렵의 일이다.
한적한 시골이어서인지,
집집마다 개를 많이 길렀는데
우리 집에도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나를 제외하면
다들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털 날리고 냄새난다고 싫어하셨고,
누나는 만지는 것조차 꺼려했다.
아빠는 개뿐만 아니라 동물이라면
아주 질색을 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개를 좋아했는데,
그래서인지 덩치가 나보다 두 배쯤은 되는
그 녀석은 나를 제 주인으로 삼고 무척 잘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무슨 좋은 일이 생겼는지
아버지께서 기르던 개를 잡겠다고
동네 아저씨들과 모인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동네에 잔치가 벌어지면
개나 소를 잡는 일이 흔했는데,
다만 그 방식이 너무 잔인해서
어린 내게는 심히 충격이었다.
그 잔인한 방법이란 것은,
개의 뒷다리를 밧줄로 묶어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는
몽둥이로 죽을 때까지 때려서 죽이는 것이었다.
30년도 지난 일이지만,
곧 닥쳐올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녀석의 마지막 눈빛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원망과 애원, 체념이 뒤섞인 듯한 눈빛이었는데
그 마지막 눈빛은 내 마음속 아픈 상처로 남았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봤을 때,
아무리 어렸어도 그러지 말라고 떼쓰고
매달렸을 법도 한데
나는 왜 그때 그러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로 기르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개나 고양이를 정말 좋아한다.
요즘은 레트리버를 키우는
유튜버 채널 영상을 보는 게 나의 소소한 힐링이다.
유튜버의 레트리버 같이 멋진 이름도 없이
그저 털빛이 노란색이어서
‘누렁이’라고 불렸던 녀석.
누렁이는 무기력하게 방관했던
자신의 어린 주인을 용서했을까.
누렁이가 부디 좋은 곳으로 갔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