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30대에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두 개 학문을 전공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대에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생각 외로 재밌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장 실습을 두 번 하면서 20대에 사회복지사로 현장에서 일하는 건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종합사회복지관 면접에 매번 떨어졌고, 계속되는 면접 탈락에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것에 대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해 갔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공연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게 됐다.
좀 더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기대했던 나에게 문화예술계 일은 판타지로 다가왔다.
그렇게 지역축제 스텝으로 일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재단 등 공공기관에서 일했지만 매번 계약직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40대가 되어 갈 때 즈음 동기들은 결혼을 하거나 조직에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어느 순간 뜨내기처럼 떠다니는 나를 발견했다.
놓아버리기엔 나의 경력은 너무 아쉬웠고, 이제 새롭게 시작한다면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하는지부터 어려워했던 것 같다. 미련이 남아서 구인란을 뒤적이면 나의 경력에 맞는 일자리는 없고, 정직원 자리는 쉽게 나오지도 않았다. 어렵게 얻은 면접자리에 가보면 어설프에 얼굴만 아는 후배들과 어색하게 인사하며 그룹면접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헤매다가 어느 해 지역문화재단 PM로 일하게 됐는데, 생긴 지 채 3년이 안되어서 아직 행정 시스템이나 기관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나는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기안권도 없었고, 조금이라도 일찍 출근하면 사무실 밖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계약직이라 사무실 번호키를 알려 줄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어떤 차별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안권이 없는 게 가장 어려웠는데 당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행사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행사 담당 PM은 기안하나 올릴 수 없으니 팀장과 직접 대면도 어려워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작 그들은 불편하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직업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게 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주변 지인들은 모두 나의 퇴사를 만류했지만 존재감이 점점 미미해져 가는 나를 견딜 수 없었고, 몇 개월 더 버텨 행사를 마무리한다고 해도 혹은 마무리하지 않고 도망간다 해도 내 인생에 점도 되지 않을 이 조직을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난 기획안이 겨우 완성된 행사를 버리고 직장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사실 삼십 대 후반부터 스스로에게 던 지 질문이 내가 정말 문화예술 분야에서 하고 싶은 게 뭔지
어떤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 때 가슴 뛰게 좋아했던 일들이 나에게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직업으로부터 배제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렇게 난 가장 가깝지만 어려운 길 사회복지로 들어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