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
- 낡고 허름한 골목을 지나다 모양도 제각각인 싸구려 화분이 여럿 놓인 연립주택들을 보게 된다. 고가 아파트처럼 전지가위로 깔끔히 손질한 화단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그렇게나마 그들만의 숲을 가꾼다. 소박한 저녁 밥상 물리고 흙 묻은 손으로 물 줬을 그들의 수고로 난 허락 없이 기쁘다.
- 하필, 정신이 아득할만치 더운 날 일이 있어 이태원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피신이라도 하듯 마침 눈에 들어온 작은 카페 문을 벌컥 연다. 마치 고벽(痼癖)이라도 된 듯 차가운 커피를 시킨다. 우습다. 언제부터 커피를 달고 살았다고.
- 어라! 고단한 몸이 감탄사를 낸다. 그럴 때가 있다. 컨디션이나 기분 따위와 무관하게 미각을 훅 치고 들어오는 맛이 있다. 땀이 식은 뒤 나서는 길에 원두 한 줌을 사 가방에 담는다. 필시 집에서 공들여 핸드드립을 해도 그 맛이 날리 없겠지만.
- 돌아가는 길, 더위에 지치지도 않고 수국이며 능소화가 한창이다. 작은 꽃잎 서로 등 대고 모여 너끈히 한 주먹은 된 수국. 양반집 마당에만 심었다는 능소화는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그 집 아가씨 대신 담장을 넘었다지.
- 질리게 꽃구경 하다 길 옆에 느닷없이 등장한 부군당역사공원에서 걸음을 멈춘다. 수백 년 내려왔다는 마을굿을 지금도 하는 모양이다. 어이쿠. 막걸리 상표까지 가지런하게 놓은 것이 어지간하지 않은 사람 솜씨다. 그 정성 부디 험한 꼴 당한 아이들 넋에도 가까이 붙기를.
- 지하철로도 족히 시간 반은 가야 집이다. 새벽에 배송된 황동규 시인의 근작 <봄비를 맞다>를 꺼내 읽는다. 팔순을 넘긴 시인이 산책길에 죽은 참새를 보곤 "굶다 갔니? 얼다 갔니?/ 사는 게 너무 답답해/ 목숨 옜다 길에 놔두고 간 건 아니니?"라고 노래한다. 또 아이들 생각이다. 이래서야 이태원엘 또 가겠는가.
- 얼마 전, 혹 다음 생이 있다면 낙타처럼 오겠다던 신경림 선생은 창비시선의 1호였고, 황 선생은 문지시선의 1호였다. 창비와 문지의 문학적 노선이 달랐듯 극명하게 다른 시를 쓰신 두 분들이지만 노년의 시들은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런가 보다. 목소리가 달랐을 뿐 그분들은 그저 시(詩)를 쓰셨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