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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Jun 27. 2024

타투

- 우울과 구름

ⓒ 스침






# 환자

- 아주 오래 잘게 쪼개진 잠만 잤다. 한두 시간 만에 깨고 잠들기가 반복됐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병원을 찾았고, 색깔이 마음에 드는 분홍색 수면제와 흰색 우울증 약이 한가득 담긴 봉투를 들고 귀가했다. 그렇다고 숙면의 쾌감을 되찾은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해졌다.


- 우울은 구름을 닮았다. 알갱이들이 모여 적당한 무게가 되면 비로 쏟아진다. 구름의 크기가 다르듯 우울의 무게도 그럴 것이다. 어떤 구름은 소나기가 되고 다른 구름은 장맛비가 되기도 한다. 나는 마음에 끼었던 구름의 무게를 손톱만치 덜어내고 얼마쯤 가벼워졌다.     


ⓒ 스침


통계

- 명징(明澄)한 것이 좋다. 맑고 깨끗한 사람, 그런 풍경과 상황을 선호했다. 목덜미와 팔뚝이 까매지긴 하지만 요새 날씨는 드물게 명징해서 반갑다. 하지만 때론 초점을 흐린 채로 셔터를 누른다. 자꾸 명징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따지고 보면 그런 사람도 풍경도 상황이란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보이는 순간과 나란 주체가 있을 뿐. 나의 관점이 달라지면 신기루가 되고 만다.


- 부쩍 부고를 받는 횟수가 잦다. 문상을 가야 하는 사이가 아니어도 즐겨 읽던 문필가, 명사들이 세상을 떠나면 잠시 허전하다. 오래전 인연을 맺었던 연로한 출판사 사장이 아침마다 의식처럼 신문의 부고란부터 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안심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직 통계적으로 살아 있다.          





# 장수풍뎅이와 소녀

- 혹 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소녀가 있다. 그의 이미지는 정확히 동그라미다. 원형의 큰 안경을 쓰고 하얗고 둥근 헤드셋을 항상 쓰고 다녀서 그런 모양이다. 그 친구가 투명하고 큼직한 박스를 카트에 싣고 나와 화단 앞에 서 있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혼자가 편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말 섞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겨서다.  


- 그는 박스에 장수풍뎅이가 있다며 흙에 벌레가 생겨 바람을 쐬어 주러 나왔다고 했다.

"그 친구 호강하네요." 

"복지가 좋은 편이죠."

투구를 쓴 장수풍뎅이처럼 그가 세상에서 용맹하기를 바랐다. 한동안 젊음이 불온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고루한 잣대와 달리 요즘 청년들은 다른 차원에서 불온하게 저항하며 살고 있을 거란 믿음을 갖기로 했다. 






# 뼈와 살

- 오랜 기원과 달리 용인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타투도 그렇다. 특히 문신을 형벌의 방식으로 택한 우리는 더욱 백안시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을 팔에 새긴 젊은 친구를 보고 문득 나라면 어떤 글자를 몸에 새길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나무나 한 그루 그릴까 싶었다. 만에 하나 하게 되더라도, 뼈보다 먼저 재가 될 살갗에 저주나 슬픔을 새기진 않겠지.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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