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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Jul 22. 2024

하루라도 완벽했기를

- with <퍼펙트 데이즈>

ⓒ 스침

# 개선

- 부쩍 "나는 개선되고 있는가"를 묻곤 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남은 나를 고치기 어렵겠지만 내 손으론 터럭만큼이라도 고칠 수 있지 않겠는가. 다 늙어 고쳐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다가도 개선되지 않을 거면 더 늙는 게 무슨 의미 있을까 싶다. 의외로 개선은 큰 용기를 필요치 않는다. 내가 아는 거, 믿는 것들이 틀렸을 수 있다는 태도만 가지면 된다. 환갑을 넘기면 마음도 몸처럼 굳어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환갑을 넘기며 그런 속성에 발목이 잡힐까 수시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 티캐스트


- 숱한 사람을 만났지만 결핍 없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나더러 사랑을 정의하라면 누군가의 결핍을 공감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내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살면서 이것저것 해봤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항상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 하난 확실히 알았다. 절로 되는 건 없다. 하물며 타인의 결핍에 공감하고 메워주려면 연습 없이 되겠는가. 아니, 반드시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는 이 애타는 일이야말로 가장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 티캐스트


# 영화

- 감사하게도 내가 사는 섬엔 영화관이 몇 있다. 그런데 규모가 작은 탓에 예매율 높은 특정 영화만 걸린다. 이달 초에 개봉해 현재 고작 4만 명이 본 <퍼펙트 데이즈> 같은 작품을 보려면 서울나들이를 해야 한다. 뭐 전철에서의 나른한 책 읽기를 생각하면 나쁜 일도 아니다.   


- 봇짐을 지고 서울 가서 본 <퍼펙트 데이즈>는 몇 번을 놀라게 했다. 포스터만 보고 고른 이 영화가 안도 다다오를 비롯한 일본의 걸출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도쿄 시부야 일대 17개 공공화장실을 홍보하기 위한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는 정보는 극장을 나온 뒤에야 알았다. 처음에 일본재단이 다큐멘터리로 의뢰했지만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등을 연출한 독일 영화계의 거장 빔 밴더스가 극영화의 소구력이 크다며 방향을 틀었단다. 거장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느끼기 전에 든 생각은 왜 우리의 공공 프로젝트는 이런 정도의 수준에 못 미치느냐는 거였다. 행정에 수준 높은 안목이 결합되지 못하면 결과가 빈약할 수밖에 없음을 또 한 번 절감했다.


- 극 초반 당황했다. 카메라 앵글은 훤칠한 키에 선 굵은 용모를 가진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가 다다미방에서 일어나 세면과 수염 정리를 하고 소지품을 챙긴 뒤 집 앞 자판기에서 뺀 캔커피를 마시며 운전해 공중화장실로 향한 뒤 청소하는 일상을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나마 날씨와 선곡의 변화로 화면은 조금씩 다르게 채색된다. 감독이 의뢰인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한 초반부가 지나면 일본 영화계의 간판 격인 야쿠쇼 코지의 섬세한 연기력이 발휘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말수까지 적은 주인공의 루틴은 대중목욕탕과 세탁소, 현상소와 작은 서점과 단골 선술집으로 장소만 바뀔 뿐 그대로 적용된다.  

ⓒ 스침

- 숨통이 트이는 건 도쿄의 랜드마크인 '스카이 트리'와 공원 벤치에서 끼니를 때우며 낡은 필름카메라로 찍는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다. 그는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보지도 않고 셔터를 누른다(현상하고 인화한 사진은 대개 찢겨나간다). 그의 촬영에 왜 목적성이 결여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 이 작품은 '평범'과 '루틴'이라는 가로축과 세로축을 갖고 있다. 되도록이면 다르게 기억하기 위해 요일마다 다른 가방과 카메라, 책을 들고나가 다른 제빵소와 카페를 드나드는 나와는 다른 선택이다. 음, 나의 선택이 다른 형식의 루틴일 수도 있겠다.


-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흐름에 서사가 더해지는 건 인물들에 의해서다. 주인공은 일을 태만하게 하는 직장 후배를 꾸짖지 않는다. 좋은 의미의 조언도 하지 않는다. 여기에 흥미로운 메피소드가 첨가된다. 유흥업소 종업원인 한심한 후배의 여자친구가 가져간 카세트테이프(감독은 이 철 지난 문명의 이기를 통해 60~70년 팝 명곡을 작심하고 들려준다)를 돌려주러 와서는 중년의 주인공에게 볼키스를 하고 간다. 표정 변화 없던 주인공은 공중목욕탕 욕탕에 앉아 수면 아래로 얼굴을 묻어 미소를 가린다. 간질간질한 비밀을 갖게 된 소년이 된다.

ⓒ 스침




- 이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가출해 외삼촌인 주인공을 찾은 조카딸의 등장과 짐짓 마음에 두었던 단골 선술집 여주인의 전 남편과의 만남 등으로 이야기는 빌드업된다. 암에 걸려 전 부인을 찾은 선술집 여주인의 남편이 했던 대사와 카세트테이프에 얽힌 사소한 기억, 용돈이 생기면 삼중당 문고를 미친 듯이 사서 읽던 시절이 오버랩되는 영화였다.


- 만약 야쿠쇼 코지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라스트신을 여러 번 재생하면서. 야쿠쇼 코지가 구청 공무원 생활을 접고 배우로 전업한 것에 관객으로서 감사해야겠다. 오늘은 선술집 여주인이 일본어로 부른 애니멀스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을 들어야겠다. 높은 습기에 젖느니 술에 젖어서 말이다. 완벽한 하루는 아니었어도 또 한 번의 오늘이 저문다.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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