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비가 10화

깨진 쌀알

by 스침

경쾌하고 발랄한 사람들을 만나면 덩달아 들뜨게 돼. 내가 갖지 못한 천성이니 부러울밖에. 그런 기운을 가지지 못한 난 대신 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농을 걸곤 해. 젊어서는 타율이 높은 편이었는데, 이젠 아재 개그로 치부되고 말아. 창작보다는 주워들은 걸 타이밍에 맞춰 인용하곤 해. 대충 이런 거지. “한국 양궁 선수를 이기는 2가지 방법은? 11점을 쏘거나, 한국 선수를 쏘면 된다.” 유머는 일상 속에서 위트 있게 대화를 끌고 가는 건 타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어느 날 어린 강아지의 아랫니를 보니, 깨진 쌀알 같이 생긴 거야. 녀석에게 별명을 붙여줬지. 관찰하고, 뒤집어 생각하면 남을 웃길 수 있는 포인트가 생기지. 어설픈 나의 유머를 좋아하는 친한 후배가 있어. 그 친구와 술자리 약속을 잡으면 유머를 충전하면서 흥겨워지는 나를 발견하곤 해. 유머는 지구상에 최소한 두 사람이 즐거워지는 시간을 만드는 거지.


엄격한 신분 사회였던 시절에도 고관대작을 희롱하는 해학과 농담, 음담패설을 잊지 않았던 사실은 당신도 알 거야. 사회적 금기가 많아진 요즘은 개그의 소재 다양성을 기대할 수 없어. 차별과 조롱으로 여겨질 수 있어서겠지. 우연히 본 미국 스탠딩 코미디에는 수위란 게 존재하지 않더라. 객석 속 성소수자, 심지어 장애인까지 즉흥적으로 소재 삼아 코미디를 하더라고. 우리와 미국의 코미디 중 어떤 것이 사회적 건강성을 지닌 지는 잘 모르겠어. 내 기억 속 최초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흑백 TV 속 <웃으면 복이 와요>였던 것 같아. 당신에겐 <개그 콘서트> 정도일까? TV 켤 일 없는 요즘,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르겠네. 시청률 저하와 규제로 인해 지상파를 떠난 코미디 프로그램은 이제 유튜브로 자리를 옮긴 듯 해. 홍대 공연장에서 열린 형식의 스탠딩 코미디 공연이 있다고 하던데 나중에 한 번 같이 갈래?


사적으로 요즘처럼 유머가 필요하다고 느낀 때가 없어. 몇 년 전부터 험한 뉴스만 접하면서 쌓인 분노로 감정은 격앙되고 입은 거칠어졌거든. 여전히 정치 사회면을 보면, 칼을 입에 문 험한 단어들과 조롱과 혐오가 난무하잖아? 외면할 순 없어. 옮고 그름을 알고 있어야 비판할 수 있으니까. 대신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어야 하듯, 더럽혀진 귀를 씻고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유머가 필요한 거지. 은유와 상징이 담긴 유머를 발견하거나, 자체 생산하기 위해 일단 거울을 보며 웃는 표정을 지어보는 거지. 지방의 한 유명한 치과 병원장을 인터뷰했는데,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재밌는 생각을 하며 웃는 연습을 한다더라. 겁먹은 환자들을 미소 짓게 해야 통증도 덜하다고 믿어서래. 설득력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어. 아들은 오늘도 노동자로서 힘들겠지만 억지로라도 한 번 웃어 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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