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주잔에 다이어트 콜라로 건배하던 당신이 “세월, 참 빠르다”는 얘기를 했지.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는 느낌은 같은가 봐. 아마 당신은 곧 마흔이, 앞자리 숫자가 바뀔 것에 불안해 보였어. 늙음이 익숙해진 나와 달리, 시퍼런 청춘을 마감하려는 당신은 마음이 조급할 거야. 땀이 식은 젊음의 고개 너머에 뭐가 있을까, 두려움이 있겠지. 그 맘 때 난 어땠을까, 그렇다고 딱히 해 줄 말은 없어. 각자의 길이 다르니, 무슨 말을 얹은들 소용 있겠어. 굳이 귓등으로 들어도 그만인 얘기를 하자면,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때쯤 비로소 ‘꽃’이 보였다는 정도야. 개나리였을 거야. 그 흔한 꽃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더라고. 왜일까? 따져 보면, 사소한 욕망에 들끓어 엉뚱한 곳에 두었던 시선이 차분해진 탓이었을 거야.
당신과 나의 차이점을 하나로 축약하자면, ‘현실인식'이지 싶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퇴화된 중2병을 앓고 있지만 당신은 상식적 현실인식 수준을 지녔어. 날 닮지 않은 아들과 아들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지 않은 아비, 다행스러운 조합이야. 아침 끼니를 자주 해결하는 빵집 아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내게 말을 걸어왔어. 기계식 필름카메라에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야. 당신과 엇비슷한 나이의 그 청년은 평소에 <로마의 휴일>에 나오던 스쿠터를 타고 다니곤 했지. 친구와 강화도로 필름사진을 찍으러 간다며, 이것저것 물어오더라고. 말을 섞어 보니, 노출과 조리개, 셔터스피드와 감도 등 기본적인 공부는 했던 모양이야. 자신의 카메라는 똑딱이라서 완전 수동카메라의 손맛을, 필름의 노이즈를 느껴보고 싶다더라. 불편의 단계와 강도를 설명하면서 “감수할 수 있겠냐”라고 물었더니, "감수가 아니라 즐기겠다"라고 하더군. 그 친구, 사진을 찍으면서 안 보이던 게 보인다며 "세상에 이렇게 많은 꽃들이 틈새마다 피어 있다는 걸 그래서 알게 됐다"는 거야. 기특한 그 친구와의 짧은 대화가 즐거웠어.
어제, 현 대통령의 모교인 안동 벽촌의 초등학교 분교가 68년 만에 폐교됐단 기사를 봤어. 그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한 시대의 저묾을 느꼈어. 깡촌에서 태어난 도시빈민이 권력의 정점을 찍은, 개천에서 태어난 마지막 용이 아닐까 싶어. 그런 이력을 가지기 힘든 세상이 되었으니. 국민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그는 소년공이었다지. 살던 동네가 달라, 동시대를 살았어도 그와 길에서 마주친 일은 없었을 거야. 만약 어릴 적 거리에서 만났어도 난 그와 친구가 되지 못했을 거야. 난 기름때 절은 작업복을 입은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테니까. 사인으로나 정치인으로서도 늘 비주류였던 그가 대통령으로서 어떤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야.
다만 그의 서사를 보면서 나는 아름다운 불꽃이었던 전태일을 떠 올렸어. 1970년, 전태일은 동료들보다 봉급을 더 받는 재단사가 되었지만 비참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려고 그런 선택을 했어. 나는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DNA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전태일식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미안하고 존경하게 돼. 자신만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나는 그들에게 또 빚진 하루를 살았어. 고등학교 때 담임이 “혼자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나를 규정한다”라고 하셨어. 쇼펜하우어는 “혼자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불행해진다”라고 했다지. ‘혼자'를 연습하고 혼자인 ‘나'를 직시하기 위해 밤산책이라도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