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해서 미안한 아들에게
오래전부터 생각했으나,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접곤 했던 일을 시작하려고 해.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일. 읽을지조차 알 수 없고, 읽었다 한들 도움이 될까 싶어 매번 망설였거든. 그렇게 주저하던 내게 한 친구가 이러는 거야. 어차피 사는 게 자기만족 아니냐고. 읽고 말고는 아들 몫이라면서 말이야. 옳다구나 싶었지.
먼저 고백하자면 이 편지는 당신에게 검색엔진이나 AI 같은 정확한 정보를 줄 수도 없고, 삶의 지혜 같은 것도 줄 수 없을 거야. 늙은 아비의 쓸모없는 넋두리에 가깝겠지. 설명되지 않는 이유로 유전자를 공유하게 된 아들에게 전하는 아비의 인간적 위로 혹은 미안함 정도로 읽어줬으면 해.
몇 장만 넘겨봐도 알게 되겠지만 딱히 중요하거나 깊이 있는 이야기는 아닐 거야. 내가 그럴 깜냥이 안 되니까. 그저 작은 관심사나 어설픈 깨달음 같은 수다가 되겠지. 귓등으로 천천히 흘리듯 들어줘. 그거면 충분해.
최근 새삼스레 깨달은 사실이 있어. AI가 화두인 시대라지만 세상사를 관통하는 진리나 지혜는 아주 오래전 완성된 듯해. 고루하게 들리겠지만 이 얘기부터 해야겠어. 맹자의 ‘사단칠정’이란 게 있잖니? 요약하면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4가지 마음과 7가지 감정이란 거 말이야.
칠정은 논외로 하고 '사단'이란 것이, 인의예지의 착한 본성에서 나온다는 건데,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고 설명하잖아. 요즘 이 4가지만 지켜도 올바른 태도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자신과 가족, 좀 더 확장해 이웃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잘못을 저지르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겸손을 잃지 않고, 세상사의 잘잘못을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당하고 살진 않겠지.
2024년 12월 3일 이후 불면의 밤이 길었어. 늙은 몸뚱이의 퇴행이야 자연의 섭리라고 수긍하겠는데, 이 공동체가 한 세대 이전으로 퇴보한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리더군. 정말로 시비지심의 본성을 발휘하느라 진이 빠지더라. 평생 알 일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자들의 이름과 이력과 행적을 지켜보면서 시비를 가려야 했으니까.
솔직히 내 일상과 무관해 보이는 일들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은 매우 귀찮고 비생산적으로 느껴져. 특히 정치, 사회적 이슈일 땐 더욱 그렇지. 지난번 술자리에서 내가 한 정당의 당원이라고 했더니, 당신이 놀라는 눈치더라. 하긴 굳이 따지자면,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내가 당적을 가질 줄은 정말 나도 몰랐어. 국민에게 총구를 겨눈 정권과 정당을 묵과할 순 없었거든. 정치 관련 이야기 차차 더 하기로 하고, 일단 어떤 일이든 시비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다 옳다는 양시론이나 모두 틀렸다는 양비론의 벽 뒤로 숨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시비지심의 본성을 따르지 않는 것은 정치적 태도의 일종이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생각해. 해당 사안을 평소 깊이 고민하지 않았으니 선택을 유보하거나 할 수 없는 거잖아.
요즘 희한한 경험을 하고 있어. 일거리도 줄어들고, 몸은 여기저기 고장인데, 호기심의 지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서야. 심지어 장르도 다양해져. 감성으로만 대하던 사물을 과학의 시선으로 보게 되고, 카메라를 들고 넓게 혹은 좁게 대상을 보면서 사뭇 다른 시각을 갖게 되고, 무관심하던 경제와 세계정세 따위를 눈여겨보게 되었거든. 물론 메모해 두지 않은 정보는 바로 머릿속 바탕화면 휴지통으로 들어가지만 말이야.
돌아보면 세상살이나 사람살이가 큰 원리나 본질로부터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이 편지들의 대부분은 측은하게 바라본 타자와 나의 부끄러움, 겸손해야 이유, 옳고 그름의 근거 등이 주저리주저리 나열될 거야. 가능하면 동어반복이나 잔소리가 되지 않게 할게. 당신의 귀한 시간 뺏지 않아야 하니까. 보이지 않을 때도 항상 당신을 응원하고 기도하는 아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