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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Feb 23. 2024

골목 끝, 누군가의 집이 있다

- 담장과 담장 사이


ⓒ 스침







# 사라지는 골목

- 도시의 골목은 시골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시골의 골목이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에서 큰길까지의 통로라면, 도시의 골목은 급작스런 개발의 자화상이 담긴 어색한 풍경이다. 그런데 우리를 키운 8할의 그 누추한 골목이 지금 사라지고 있다.    


- ‘아파트 키즈’의 윗 세대들에게 골목은 유년의 기억이 저장된 각별한 공간이다. 방과 후 가야 할 학원 따윈 없었던 시절, 골목은 유일한 놀이터이자 사회성이 길러진 공간이었다. ‘비사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같은 놀이로 골목은 늘 데시벨이 높았고, '밥 먹어!'란 호령이 떨어지고 나서도 아이들은 놀이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보다 덩치가 크거나 윗학년과의 관계 속에서 서열이 정해졌고, 사내아이들은 골목에서 비로소 ‘수컷’이 되어갔다.








# 골목 키즈(kids)

- ‘골목 키즈’들에게 자신의 성장사가 기록된 골목이 지금까지 보존돼 있다면, 그건 굉장한 축복이다. 논밭에 들어선 강남이 아닌 강북의 얘기다. 재개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내 유년의 골목들은 최근까지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 물론 내 키보다 긴 국수를 뽑아 걸대에 걸어 말리던 국수가게나 두꺼운 이불솜을 틀며 연신 먼지를 날리던 솜틀집은 이제 그곳에 없다.


- 하지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수줍게(?) 드나들던 여탕과 그 옆 미장원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유난히 키가 작고 아비 없이 자란 탓에 열 살이 넘어까지 들락거려야 했던 여탕. 조용필의 대마초 사건 기사가 실린 <선데이 서울>을 곁눈질로 봐야 했던 미용실이 박제돼 있었다.

ⓒ 스침




- 꽃을 수놓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입학했던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거주 공간은 아파트였다. 연탄아궁이가 방 옆에 붙은 구식 아파트였지만 같은 학급 대다수 친구들은 지금 봐도 신산한 홍제동 ‘개미마을’에 살았고, 그 아이들에겐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연탄 아파트’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 그런데 흥미로운 건 내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쾌적하고 널찍한 놀이터를 마다하고, 비좁고 더러운 개미마을 골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흑백으로 기억에 남은 70년대 그 골목에서 무얼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분명한 건 그때, 개미마을의 누추한 골목을 드나든 것이 나의 유년을 훨씬 풍요롭게 했다는 점이다.





# 유년기의 살점이 묻은 곳

-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김현식의 노래처럼 골목은 우리에게 유년의 체험이 자리한 공간이자, 동시에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이 촘촘히 박힌 은밀한 장소이기도 했다. 가로등 불빛 뒤에 숨어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다잡고 서툰 입맞춤에 열중하던 추억 한 두 번쯤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는가. 세상의 수많은 골목에서 우리는 신파극(新派劇)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 스침



- 이렇듯 유년기와 청년기의 살점이 묻어 있는 골목은 집과 집을 잇는 연결 통로였다. 집으로 돌아올 때, 눈에 익은 골목에 접어들면 우리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안도한다. 골목부터가 이미 집인 것이다. 집을 나설 때도 마찬가지다. 대문을 나서 골목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바깥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 골목 안 풍경은 참으로 다양하다. 누군가는 가지런히 쌓인 연탄재를 기억해 낼 것이고, 신문과 우유를 돌리던 자전거가 골목 끝으로 사라지던 새벽 풍경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한 겨울 비탈진 골목을 오르던 연탄 실은 리어카의 꽁무니를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기억들의 공통점은 우리네 일상의 깊숙한 곳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 그렇다, 골목은 구부러지고 휘어진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담은 그릇이었다. 하지만 사생활을 보호하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어느 집에서 꽁치를 구웠는지, 누구네 내외가 어젯밤 무슨 일로 한바탕 싸웠는지는 이튿날이면 골목을 타고 동네에 짜하게 알려졌다.


- 그런 사생활 노출이 반드시 불쾌하고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힘든 일은 이웃의 도움으로 해결되기도 했고, 다툼은 누군가의 중재로 해소되기도 했다.




# 잘 가라, 골목들아

- 어느 동네든 골목을 돌다 보면 허름한 이발소와 미용실, 그리고 구멍가게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골목이 줄어들고 있다. 도시의 마당이자 좁은 광장이었던 골목. 김장을 품앗이하던 골목 풍경도, 싸구려 술에 취해 귀가하던 아버지가 버겁게 오르던 물컹한 계단도 지도 속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 스침

  


- 골목은 험하고 야박한 세상에서 돌아와 집으로 들어오기 전, 일종의 정화의식이 행해지던 공간이었다. 우리는 밖에서 받은 상처와 설움을 골목에 쌓인 쓰레기더미에 던져두고 비로소 집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직 살아남은 골목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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