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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Feb 25. 2024

<설국>, <파묘> 그리고 사평역에서

- 눈에 대한 자유연상

# 솜틀집

ⓒ 스침



- 오래간만에 솜이불 같은 두터운 눈이 내렸다. 눈은 쌓인 두께에 따라 다른 사물을 연상시킨다. 얇게 내린 눈은 배추전의 밀가루 반죽을, 오늘 같은 눈은 딱 솜틀집에서 튼 목화솜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학교를 오가는 길에 솜틀집이 있었다. 겨울이 밭아 일감이 몰리면 솜먼지를 날리던 솜틀집을 멀리 돌아가곤 했다.


- 질척이는 주택가를 피해 온전한 설경을 보러 근처 절집을 찾았다. 큰길을 슬쩍 비켜나자 거짓말처럼 사바(娑婆) 세계가 지워진다. 생사가 초상집 병풍 앞뒤로 나뉘듯 사바와 불토의 차이도 병풍 두께 정도 아닐까?


-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의 이름은 용궁사(龍宮寺)다. 옛 고승들은 참 바지런도 했다. 이 섬구석까지 발품을 파셨으니. 


- 용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신화에 등장한다. 최재천 교수는 그 이유를 인류가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목격했기 때문이고, 그 무언가가 공룡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한다.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다. 용은 승천의 이미지를 갖는다. 유럽의 용들도 하늘을 휘젓도 다닌다. 그런데 동아시아권 신화의 공통점은 용왕이 사는 궁이 바닷속에 있다는 거다. 아무튼 섬과 해안가엔 사찰이나 점집이 많다. 걸핏하면 죽어나가는 목숨을 건 뱃일이 일상이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 오래전 무속을 테마로 몇 년 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 하나는 내륙보다 섬이나 해안가의 굿이 세다는 거다. 작두도 제대로 날을 세웠고, 구능(타살) 거리도 비위가 여간 강하지 않으면 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삶이 모질어서였으리라.

 


ⓒ 스침



# 죽음의 형식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이 절제되고 단정한 첫 문장으로 기억되는 <설국(雪國)>은 펜 끝이 무딘 문청(文靑)에게 우울과 판타지, 허무의 극치를 처음 알려준 감각적 사소설이었다.


- 그런데 대표작 <설국>으로 일본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란 영예를 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1972년 가스관 호스를 입에 문 채 스스로 엽기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어려서 부모와 누이에 조모까지 잃고 15살에 조부상을 치른 뒤 사고무친이 된 그의 우울했던 유년기가 그에게 그런 죽음의 형식을 택하게 한 건 아닐까.

ⓒ 문예출판사

- 박완서 선생은 <일본산고(日本散考)>에서 일본을 "칼로 시작된 죽음의 문화와 정신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규정짓고, "일본 문화는 죽음을 숭배하는 나약한 로맨티시즘이며, 그 기원은 외부의 복제였다"라고 비판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비상식적 죽음을 그 논리에 꿰맞춰본다.      



# 오컬트(Occult)

- 심약하고 비위가 약한 나는 좀비물, 하드코어 한 호러물 따위를 극도로 꺼려한다. 일본 공포영화 <주온(呪怨)>, <링> 같은 영화는 포스터조차 보기 싫다. 특히 모든 사물에 신격을 부여하는 샤머니즘의 나라 일본의 영화는 더욱 그렇다.        

 

- 그런 내가 매우 정색하고 본 오컬트 영화가 있다. 2019년 작 <사바하>는 흥행에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관람 후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신작 <파묘(破墓>가 개봉했단다. 아직 관람 전인데 들리는 관람평이 기대치를 높인다. 우선 우리네 이장(移葬) 문화와 오컬트의 결합이 흥미롭다. 전작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가 장르의 문법을 클래식하게 따랐다면, 이번에는 진일보하며 자기 색깔을 드러낸 모양이다. 이제 박찬욱, 봉준호의 뒤를 잇는 감독의 등장이 필요하다. 게다가 장르적으로 한국 영화의 다양성 확장에 기여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파묘> 스틸. ⓒ (주)쇼박스

ⓒ 스침




# 사평역에서

- 어려서 눈이 내리면 맨발에 벙어리장갑이 없어도 좋았다. 하지만 언 논에서 썰매를 지칠 때는 쌓인 눈이 성가셨다. 벼 벤 자리가 쌓인 눈에 가려 썰매날이 걸리기 일쑤였다. 빨랫거리를 보탠 날엔 간신히 얻어먹은 저녁밥이 체하곤 했다.


- 눈밭에서 생각이 많아졌는데도 발이 시리다. 이 놈의 몸뚱이. 언 발 녹일 난로 생각이 간절하다. 그리고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떠올린다. 


-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사견이지만 <사평역에서>는 신춘문예 시의 마지막 절창이었지 싶다. <아기참새 찌꾸>란 동화책을 낸 그를 만나 마포 언저리에서 낮술을 한 적이 있었다. 1980년 5.18 현장에서 치욕을 겪었던 그는 "난 지금도 고속버스 타고 광주 초입에 들어서면 자꾸 눈물이 나"라고 고백했다. 난 짧은 신음소리도 덧붙이지 못하고 술잔만 기울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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