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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Feb 21. 2024

미술관과 멀미

- 배웅과 마중

ⓒ 스침

# 짠함

- 가끔 집 앞 영세 브랜드 치킨집에서 간단하게 술 몇 잔 나눠먹는 손아래 친구가 짧은 출장길을 떠난다기에 공항엘 바래다주었다. 평소 잘하지 않는 배웅이다. 워낙 잔 정이 많은 사람이라 되갚은 거다. 세상에 큰 정이란 없다. 잔 정이 모여 커질 뿐. 관계란 거울 같아서 받은 대로 돌려주는 법이다. 꽤나 단단하게 산 50대 중반의 사내가 유난스럽지 않게 살갑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언제부턴가 짠할 때가 있다. 생각건대 나보다 먼저 고아가 된 걸 안 이후부터인가 싶다. 손주 볼 나이에 무슨 고아 타령이냐고? 부모가 필요 없는 나이란 없다. 백발의 나도 가끔 엄마 품에 안겨 목쉬게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땅을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연예인을 배웅하거나 마중하거나, 공항의 아침은 분주했다. ⓒ 스침

# 반가움

- 가벼운 이별이라도 배웅은 서운하다. 서운함을 달랠 겸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1층에서 반가운 이름 '구본창'을 발견한다. 올해 서울시립사진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한국 현대예술을 대표하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2023.12.14~2024.03.10)'가 열리고 있었다. 참고로 서울시립미술관은 무료다.


- 독일 유학 시절부터 귀국 이후의 작품이 연대기 순으로 망라되고, 소장품까지 전시돼 그의 예술 세계는 물론 관심사까지 엿보게 했다. 그를 상징하는 달항아리 사진은 물론 펜화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구본창의 항해>에 전시된 작품들. 그의 작품들 중 유난히 주름지고 힘줄이 드러난 손과 발이 시선을 잡았다. ⓒ 스침


- 내겐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논할 지적 역량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이 반가웠던 데는 작은 일화가 있어서다. 2016년 그의 작업실을 찾아 짤막한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보도 사진이 아닌 감성을 내세운 작품 세계로 한국 사진계에서 새 영역을 개척한 그는 그 자리에서 "어떤 대상이 나를 거쳐 인화지 속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호흡으로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균질한 작품을 위해선 작가 자신이 항상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고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었다.


- 인터뷰 뒤, 그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혹시 필요한 자료나 사진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이었다. 명사들은 늘 바쁘고,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일정을 조율하고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조력자들도 있어, 손수 마무리 짓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그랬다. 그리고 그 친절의 유효 기간이 지금까지 이어져 나는 그의 전시회가 사뭇 반가웠다.

              


잘 변하지 않는 것들. ⓒ 스침

# 불변

- 바삐 살다가 여전한 것들과 마주할 때 묘한 안도감이 든다. 교복 입은 소녀와 어색하게 걷던 광화문 돌담길이나 편집부 선배가 "저 건물 상해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지은 거야"라고 알려줬던 신아기념관이 여전하다. 물론 그 소녀의 얼굴은 흐릿하고 선배는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기왕 궂을 거면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올라가네"의 풍경을 만들 것이지 진눈깨비만 내렸다.


- 내게 불변인 것 중 하나는 심한 '멀미'다. 뒷자리는 물론 조수석도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운전대를 잡아야 피할 수 있는 멀미는 나의 몸엣가시다. 버스를 외면하고 2호선 시청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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