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침 Mar 01. 2024

구두와 벽돌 feat. 성수동

- 도시재생을 지켜보면서

# 피맛골과 을지로

-1990년대 중반 한 시사주간지의 '남북문제 심각하다'란 제하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었다. 당연히 남북한 관련 기사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해당 기사는 서울 강남과 강북의 개발 격차로 인한 갈등이 첨예하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강북은 가기가 싫어요. 거리도 더럽고 사람들도 거칠어서 툭하면 시비를 걸고..."

당시 기사에 실린 강남 거주 한 청년의 코멘트였다. 순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온도차가 있을 뿐 나 역시 강남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강북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강남행을 꺼린다. 잘 구획된 거리가 오히려 낯설기 때문이다. 강북은 서대문과 종로, 영등포와 마포구처럼 인접한 지역도 완전히 다른 색깔로 구분됐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강북은 구마다 스카이라인이 달랐고, 로컬 문화와 아이콘도 크게 달랐다. 반면, 강남은 거기가 거기였다. 당최 캐릭터가 없어 보여 사랑하기 어려웠다. 언제가 이런 얘기를 술안주 삼았더니, 친구 왈 "가난한 글쟁이답네. 그런 생각할 시간에 땅 살 궁리를 했으면 지금쯤 졸부라도 됐을 텐데"라며 혀를 찼다.  

ⓒ 스침

      

- 종로 피맛골은 짧았던 잡지사 기자 시절 거의 모든 추억이 생산된 곳이었다. 이미 작고하신 원로 예술가들이 썼던 낡은 의자에 앉을 기회를 주었던 열차집(빈대떡)과 짜장면보다 군만두를 먼저 주문하게 만든 신승관, 한여름 점심 반주 막걸리로 시작해 다음날 해가 뜨고 나서 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던 청진옥(해장국)까지, 피맛골은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그렇게 청년의 추억을 빼앗긴 내가 을지로 개발을 곱게 볼리 없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깡그리 훼손될까 두려워서다.   




# 한국의 브루클린(Brooklyn)?

- 요즘 성수동이 강북의 핫플레이스란다. 일단 명품 브랜드들의 팝업스토어(Pop-up Store)가 자주 열린다는 건 일종의 지표다. 성수동 일대는 한국 현대사의 미니어처다. 경마장과 뚝섬 유원지였던 이곳은 산업화 시기 공장지대였다가 현재는 옛 공장 건물들이 스타트업 사무 공간과 미술관을 비롯한 전시 공간 등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이력 때문에 성수동은 '한국의 브루클린'으로도 불린다. 제조업의 쇠퇴로 공장 지대의 슬럼가란 이미지가 강했던 뉴욕의 브루클린이 1990년대 젊은 예술가들의 진입과 힙합 문화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떠올랐던 것을 빗댄 것이다. 성수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이 슬럼화로 이어지지 않고 도시 부흥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그런 조어가 그럴듯하다.      


ⓒ 스침

ⓒ 스침

# 위축된 상징

- 성수동의 아이콘 중 하나는 '수제화(手製靴)'다. 1970년대 업체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탓에 특화 거리(성수수제화거리)까지 조성돼 있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해도 훨씬 더 움츠러든 모양새다. 아무리 행정적 뒷받침을 해도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사양산업을 되살릴 방법은 많지 않아 보인다. 대신 그 자리를 사회적 기업과 젊은 예술가들이 채우고 있다.

ⓒ 스침







- 성수동의 또 다른 아이콘은 '붉은 벽돌건물'이다. 2023년 현재 성동구 소재 전체 3,346동의 건축물 중 28.6%인 957동이 붉은 벽돌로 지어졌단다. 물론 이중에는 1980~90년대 대규모로 양산된 붉은 벽돌로 지은 구축이 많지만 신축도 적지 않다. '붉은 벽돌 마을 사업'으로 신축 건물에 붉은 벽돌을 사용하면 지원도 해주는 모양이다.


- 이렇듯 사양산업의 퇴락을 막을 순 없지만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아이콘을 지키는 일은 가능하다. 왜 피맛골에 이런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 적용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지난 일이야 그렇다 손 치고 을지로는 성수동의 사례를 참고했으면 좋겠다.



ⓒ 스침



# 무엇을 경쟁할 것인가

- 지역소멸은 비단 지방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역시 지역에 따라 소멸의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부디 유능하고 안목을 가진 전문가 집단이 일관되고 창의적이며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을 서둘러줬으면 한다.


- 거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내게 청년 몇이 말을 걸어왔다. 체격이 큰 한 청년이 "나도 당신과 같은 00 카메라를 갖고 있다"며 슬링백을 열어 자신의 카메라를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카메라에 장착된 렌즈를 보여주며 "내가 중국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 렌즈의 가성비가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내가 "내 렌즈도 메이드인 차이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그가 환하게 웃었다.



독특한 외관의 거대한 건축물이 공사 중인 성수동. ⓒ 스침

- 얼마 전 중국인 유학생과 상인들로 인해 대학가의 상권과 풍속도가 바뀌었다는 기사를 보았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곁을 스치며 걷는 젊은이들 상당수가 중국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보다 상위 기종의 카메라와 값비싼 렌즈를 보여주던 중국 청년과의 짧은 대화 뒤, 옛날 일이 떠올랐다.


-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우리 중소기업인들의 중국 방문이 러시를 이뤘었다. 당시 우리 경제 수준 상당한 격차로 중국에 앞서 있었다. 당시 그들 중 일부가 중국에서 허세를 부렸었나 보다. 그런데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이 중국 파트너들의 초대를 받아 그들 집을 찾은 모양이다. 거기서 그들은 중국인들의 놀라운 재력에 그만 기가 꺾였다고 한다.


-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강력한 제국이었던 중국은 결코 G2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비록 암흑기가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중화사상을 신봉한다. 규모의 측면에서 우리가 경제력으로 그들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중국 바둑애호가들의 진심어린 존경을 받는 이창호 9단, 얼마 전 농심배에서 중국 기사들을 전멸시킨 프로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 월드클래스 축구선수 손흥민에 프로게이머 페이커까지. 중국 네티즌들은 "왜 14억 분 1이 5천만 분의 1을 극복하지 못하는가"라며 집단적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창호와 신진서, 손흥민과 페이커의 공통점을 "교만하지 않고 진중하며, 위기에 의연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대목이다. 실력에 인성까지 두루 갖추고 전 세계를 누비는 사랑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해준 것 하나 없이 당신들과 동시대를 살게 돼서 행복하다"라고 말이다.



이전 05화 날개 달린 길 '7번 국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